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더글라스 엠린/승영조 역] 동물의 무기(2014)

독서일기/생물학

by 태즈매니언 2019. 8. 12. 00:34

본문

저자 더글러스 엠린은 쇠똥구리의 진화를 연구한 생물학자이다. 엠린은 동물들이 가진 무기의 진화 사례들을 관찰하여 자신이 발견한 무기 경쟁을 발생시키는 세 가지 방아쇠를 제시하고 있고, 인류의 전쟁사 속에서 무기의 발전과 도약 역시 역시 동물들의 무기 진화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새로운 지혜도 아니다. 칭기스칸의 군대가 늑대들의 사냥 방법을 참고한 것처럼 고대 이래 많은 전략가들이 곤충과 동물들의 싸움 혹은 생존경쟁을 보고 무기개량이나 전술을 개발해냈으니.

 

엠린은 변화되는 환경에 따라 언제든 재적응해야 하는 대다수의 자연선택과 달리 특정한 유전형질을 극단으로 발현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성선택의 압력이 실제 동물들 사이에서 얼마나 강한지를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는데 인상적이었다.

 

보통 45세가 넘은 수컷만이 겨우 짝짓기를 했고, 수컷 89마리 중에 53마리가 새끼를 한 마리도 탄생시키지 못했고, 고작 세 마리의 수컷이 압도적 다수의 새끼를 탄생시켰던 아프리카 코끼리(암컷은 4년 중 단 5일 동안만 수정이 가능하다고...)의 장기연구 사례와 11~12세기 봉건제 하의 유럽 귀족가문의 차남이하 아들들이 다른 귀족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벌였던 마상 창 대결 등의 구애경쟁을 함께 비교하는 식이다.  

 

엠린은 왜 같은 계통에 속하는 데도 어떤 종은 수컷들의 무기경쟁이 치열하고, 어떤 종은 그렇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쇠똥구리 연구와 다른 연구자들의 성선택 연구들을 참고한 끝에 동물계에서 무기 경쟁이 발생하는 방아쇠가 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대부분의 경우 수컷들이 벌이는) 성선택을 위한 치열한 경쟁, 둘째, 국지적으로만 존재해서 경제적 방어가 가능한 생태환경(보금자리, 먹이가 풍부한 곳, 번식장소 등), 셋째, 번식을 위해 침입자와 1대1로 전투를 벌이는지의 여부이다.

세번째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다. 엠린은 쇠똥구리를 연구한 끝에, 찾아낸 똥을 땅밑에 파묻고 굴을 지키는 쇠똥구리 종들은 암컷이 거주하는 굴 입구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키틴질의 뿔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는데 반해, 똥을 땅으로 굴려서 경쟁자가 없는 곳으로 가져가서 번식하는 쇠똥구리 종들은 다른 수컷들이 사방에서 도전할 수 있어 여러 마리가 혼란스런 쟁탈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뿔이 없거나 작은 점에서 이러한 착상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복수의 쇠똥구리 실험군/대조군을 멘델처럼 번식시키느라 7세대가 나올 때까지 거의 2년 동안 날마다 쇠똥구리의 먹이인 신선한 똥을 구하러 다녔다고 ㅋㅋ)

 

멜린은 책 후반부에서 인간의 전쟁사와 무기체계의 혁신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무기체계의 생물학적 진화와 인류의 문화적 진화가 거의 유사함을 보여준다. 물론 틀린 점도 있다.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인데 반해 인간 무기의 개선은 설계자나 기술자의 의도에 따른 결과이다. 문화적 진화는 성선택과 관련이 없다는 점도 다르고.

 

우람한 뿔을 자랑하는 미국 쇠똥구리가 얍삽한 중국 쇠똥구리의 옆 굴 파서 통로 뚫기에 당하지 않길 ㅋㅋ

 

--------------------------------

 

107쪽

 

성선택이 매우 강력한 극한의 모집단에서는, 이 성선택이 이들 동물에게 작용하는 다른 모든 형태의 선택을 무색케 한다. 성선택 이외의 서택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생충이나 질병에 대한 면역, 생리, 먹이,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수컷들은 오로지 번식 경쟁에서 이길 기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164쪽

 

쇠똥구리의 경우 뿔의 성장은, 종에 따라 눈, 또는 낼개, 촉수, 생식기, 정소 등의 성장 부진으로 이어진다. 전투 능력을 얻은 대가로 시력이나 비행 능력, 후각, 교미 성공률이 저하되는데, 이는 무기가 과하게 비싼 셈이다. 이런 식의 타협은 극한 무기를 가진 종의 다양성을 감소시킨다.

 

206쪽

 

북미 순록도 조심성이 많다. 2년 이상 수컷끼리의 경쟁을 1만 1,600회 이상 관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중 6회(0.05%)만 결투를 벌였다. 
자연계의 아주 즐거운 역설 가운데 하나로, 가장 극한의 무기는 치열한 전투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적다. 가장 크고 가장 컨디션이 좋은 수컷은 육중한 무기를 흔들어 대다수 경쟁자가 덤비는 것을 즉석에서 사전 차단할 수 있다.

 

222쪽

 

몰래 숨어들기, 정액 쏴 대기, 틈을 노리며 위성처럼 배회하기, 암컷 흉내 내기 등 속임수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동물들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배자 수컷이 이제는 무장한 경쟁자와 재래식 결투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규칙을 파괴하는 수컷들의 더욱 불길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릴라와 지뢰, 사제 폭탄, 사이버 해커 모두가 재래식 군사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한 속임수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는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속임수의 효과가 너무 커지기 시작하면 무기 경쟁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