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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C형 남자 이종명(2010)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9. 3. 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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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만 책이 다섯 권을 훌쩍 넘어 열 권에 가까워지는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다. 좋아하던 넷플릭스를 보기도 귀찮고. 이럴 때는 미음을 찾는 환자처럼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그림이나 사진 많이 나오는 그림책을 찾는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가구디자이너가 쓴 책이라 가구제작이나 공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골랐던 책인데 웬걸 치열하게 살아온 사십을 훌쩍 넘은 성공한 남자가 토로하는 솔직한 이야기였다. 가구나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는 후추나 소금처럼 아주 적절하게 살짝 뿌린 정도? 그런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 읽고 출판일을 보니 무려 2010년에 나온 책이었다. 그래서 더 감탄!

 

나와는 성격도 정반대고, 책에 등장하는 이 분이 만든 튼튼하고 비싸게 팔렸다는 가구들 중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는데 말이다.(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건 본인이 살았던 집의 굴뚝이 보이는 디자인 하나였다) 그래도 수백만 원짜리 가구를 흔쾌히 살 수 있는 4~50대에게 어필했기에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어찌보면 치열하게 도전했던 흙수저의 흔한 성공담일수도 있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사람 특유의 구체적인 묘사들이 생동감을 준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10대의 이종명, 20대의 이종명, 30대의 이종명, 40대의 이종명이 악전고투하며 생각이 변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거였다. 심지어 앞에서 자신있게 훈계했다가, 뒤에서 본인의 예전 생각이 짧았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격을 패턴으로 분석하려고 혈액형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C형"이라고 응수한다는 재기발랄한 남자의 성장담 멋졌다. 그래서 인용하고 싶은 구절도 많았다.

 

많이 등장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위한 가구나 인테리어 팁들은 디자인 취향은 다른 데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아주 흡사해서 신기했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종명 가구스토리" 중에서는 <아이방 꾸미는 팁>, <엣지있는 집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소소할 수도 있지만 듣고보면 맞장구칠만한 꿀팁이더라. 읽으면서 페친이자 실친 Dongshin Yang이 생각나서 특별히 추천해본다. 동신이는 삼수 안했지만 홍대 출신에 출중한 외모는 물론 결혼과 육아에 대한 관념이 비슷한 것 같아.신기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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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쪽

 

거울 앞에 서보자. 지나온 과거가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자연스레 미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은 날에는 아예 거울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대견하게 생각될 때는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멋져 보인다. 이 모습을 유지해야겠다고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행복한 내 모습을 내가 보고 싶어서 그렇다.

 

134쪽

 

이종명 패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디자인하는 사람이 제 몸 하나, 제 사는 집 하나 디자인 못하면 어불성설이다. 디자이너는 신발 끈 하나도 달라야 하고, 그가 사는 집은 문고리 하나도 달라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지론이다.
(중략)
삼십 대 이후부터 이렇게 옷, 가방, 시계, 신발까지 최상품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고 최적의 상태에서 일을 했다. 일종의 자기암시였다.


168쪽

 

나는 여행을 가면 대부분 목적이 없이 머문다. 여행을 가서 제대로 즐기려면 "나 거기 가봤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명소가 아니라 관광객이 북적이지 않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장소를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겨움과 소박함이 훨신 오래 여운이 남는다.
(중략)
외국 소도시 여행을 위한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나는 무작정 전철이 끝나는 동네를 간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전철의 종착역에는 전원 주택단지들이 있다. 복잡한 빌딩숲을 벗어난 곳이니 어디든 외곽이 주는 여유와 시원함이 있다. 그런 곳에는 고급주택이 많고 아름다운 정원이나 각종 다채로운 주택 구조물 등 볼거리도 많다.

 

182쪽

 

전시회에도 초가 빠질 수 없다. 가구 사이사이 촛불을 밝혀두면, 작은 불꽃들이 가구의 느낌을 한결 풍부하게 살려주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관람객의 작품 감상에도 도움을 준다.

 

210쪽

 

내가 아이들에게 유독 잘해준 건 어려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과 멋을 느껴봄으로써 아이들이 큰 시야를 갖고 폭 넓은 감수성을 갖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나의 의도와 달리 역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자라나면서 매사 시큰둥하고 감흥을 잃어가니 말이다.
(중략)
인간이란 존재는 결핍과 시행착오 속에서 문제해결력도 기르는 법인데, 부모인 내가 앞장 서서 그러한 기회를 원초적으로 박탈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266쪽

 

'버리기'는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들 사는데, 여러모로 해롭다. 그 스트레스가 가족에게 고스란히 간다. 잘 버리면 인생도 쾌적하다. 나는 청소시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 언제든지 내킬 때 한다. 밤에 청소를 하면 다음 날 상큼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아침에 하는 청소는 활기찬 하루를 열어준다. 청소는 정신의 맨손체조다. 모든 물건이 적재적소에 있으면 옷 입기부터 일사천리로 일이 척척 진행된다. 그뿐인가. 집 안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넉넉하고 깔끔한 여백이 생겨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찬다.

 

294쪽

 

내가 두려워하는 고객은 이종명가구 한 점을 사고 싶다는 소망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찾아온 고객이다. 넉넉지 않은 사정에 어렵사리 돈을 모았으므로, 돈을 모으는 동안 바람과 소망도 그만큼 커졌으므로, 기대치가 높다. 대개 상담하는 과정에서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정을 눈치 채면 더 마음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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