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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19. 4. 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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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등의 칼럼으로 인상깊었던 김영민 교수님의 에세이집.

 

시의성 있는 칼럼들을 딸 손보지 않고 그대로 모아 펴낸 책이라서 에세이로서의 매력이 돋보인다고 하긴 어렵다. 칼럼과 책은 다른 글쓰기라고 생각하기에 아무리 잘 쓴 칼럼들을 모아도 좋은 책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무신론자라 그런지 생각의 결이 내 취향과 맞는 부분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세파의 고단스러움에 시달리며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시기에는 거슬릴 수도 있다. 성격을 일그러트릴만한 큰 어려움에서 자유롭고, 자존감을 깎아먹는 지속적인 학대를 별로 겪을 일 없는 이가 갈고닦은 고아함에서 귀족적인 풍모도 느껴지고. 이러니 먹물들이 좋아할만 하지만. ㅎㅎ

 

이 분의 글을 소리 내서 읽어보면 자연스러운 발음이 이어진다. 리듬감있는 글쓰기의 아름다움을 알겠다.

 

또 잘 언급되지 않는 책과 영화들 추천리스트도 챙겼다. 김영민 교수님의 추천했던 영화 중에 <박화영>만 봤는데, <똥파리> 이후로 그런 강렬한 영화는 처음이었고, 내가 아는 세상의 폭이 확대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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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성장한다는 것은 주변과 자신의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의 체험 속에서 크기란 상대적이며 가변적이다. 
(중략)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56쪽

 

나(김영민) : 아이를 낳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 낳는 것이 좋습니까?
선생님 : 모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 모를 것이고, 겪은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다시 태어나서 아이를 낳지 않아보기 전까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대체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한 방법이다.

 

93쪽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게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라면, 진리를 결국 다 알 수 없다는 게 학문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요컨대, 진리를 알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 학문을 하는 셈이죠.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175쪽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 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327쪽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 중의 하나는, 남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신이 집단생활, 공동체적 삶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인과의 공존은, 운명이다. 정치학이란 그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정치사상이란 그 운명의 사랑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생각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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