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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사랑의 이해(2019)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19. 6. 1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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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승혜 작가님 추천으로 알게 된 소설가 이혁진님의 데뷔작 <누운 배>에 감동받아 올해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를 읽었습니다.

 

이혁진 작가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선배의 집에 얹혀 살면서 3년을 기울여서 완성한 <누운 배>. 그 작품으로 2016년 7월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고 5천만 원의 상금을 받으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셨다죠.

 

제목은 좀 마뜩찮았습니다. '~의 이해'라는 제목은 따분한 개론 교과서에 어울리는 제목이지 소설 제목은 아니지 않나요?

 

<사랑의 이해>는 서울의 어느 은행 지점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고 결혼으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는 미혼 남녀들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와닿는 작품이라니..

 

내일 출근해야 하지만 이 늦은 시간까지 <사랑의 이해>를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한 해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누운 배>와 <사랑의 이해> 둘 중 어느 작품에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상을 주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랑에 관한 소설 중에 외국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로는 최인석님의 <연애, 하는 날>이 제일 마음에 남는군요. 일상의 너절함과 묶음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민낯과 경제적 여건이라는 계급성을 다루고 있어서 최인석 작가님이 좋았는데, 그 책이 준 감동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경지네요.

 

세상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폐쇄된 계처럼 같은 직장 사람들 사이의 사랑의 이야기라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처럼 직장 내 사람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직장 밖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혹은 외딴 지역에 있어서 회사 말고는 또래의 이성을 만날 기회 자체가 거의 없는 직장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딱 한 부분에서만 공감을 못하겠더라구요.

 

월급쟁이들의 계급사회를 좀 알 정도로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30대 싱글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네요.

 

배우 김민희씨가 정말 예쁘게 나왔고, 사내연애의 밑바닥을 보여줬던 영화 <연애의 온도>가 연상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작품이 훨씬 깊습니다.

 

몇 시간 후에 출근하면 피곤해하겠지만 훌륭한 소설 덕분에 며칠 누군가를 저격하며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을 흘려보냈네요. 고마운 마음에 두 권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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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쪽

 

"남의 일이라서 더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벌거벗기는 게 사람들이에요. 자신과 다를수록,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을수록 더 뻔뻔하게, 무자비하게."

 

234쪽

 

"차이가 뭔지 알아? 못나고 잘난 게 아니야 바닥이야. 디디고 선 바닥!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나처럼 유리 한 장이 바닥인 놈은 못 뛰어. 더 높게 뛸수록 와장창 박살이 나니까. 굴어떨어지면 어디로 굴러떨어질지 환히 보여서,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니까. 콘크리트 바닥인 애들은 달라. 걔네들한테는 뛰든 말든 하고 싶고 말고의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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