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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외8명] 한정희와 나(2018)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19. 6. 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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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바탕 비가 퍼붓고 난 다음 날이라 적당히 습기가 있고 공기도 선선한 6월의 아침. 출근길에 난 어느 소시오패스 미친 놈이 폐암 4기와 췌장암 4기가 콤보로 와서 암병동에서 몇 달간 온갖 고통스러운 방사선치료와 항암제 화학요법 지료 다 받으면서 모아둔 돈 다 쓰고 거렁뱅이로 뒈지라고 저주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이런 소심한 저주로는 울화가 가시지 않아서 어제 빌려온 이 소설을 집어들었는데 소설이 왜 이리 재미있지? 물론 표제작처럼 완성도가 매우 높은 소설은 재미있는게 당연하지만 좀 부자연스러운 단편들도 읽을 때 재미있었다.

단편들에 나오는 미친 놈들의 행동거지나, 나도 속으로 하지만 누구한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손가락질도 하며 다 읽고 나니 더러운 기분이 좀 폴렸...다.

논픽션을 편독했다는 건 그만큼 내 자신의 감정이 무미건조했고, 남들의 희로애락에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었나 싶다.

이기호 작가의 당선작 <한정희와 나>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 각별한 느낌을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절대적 환대'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배아파 낳은 친자식에게만 가능한 행동일까?

이기호 작가의 자선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현실감이 떨어지다보니 우화 같았는데, 내가 얼마전 까지 살았던 동네를 묘사하는 것 같아서 신기했고.

권여선 작가님의 <손톱>은 버금가게 좋았던 작품인데,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들이 짐작 못하는...도시의 반지하 월세방이나 고시원에서 아무런 사회적 도움도 못받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지그시 관찰하고 있는 듯 해서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는듯 싶더라.

구병모 작가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나 최은영 작가의 <601,602>는 분명히 이런 일이 벌어지던 시절이 십 년도 채 안되었다는 건 알면서도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문화 가정을 소재로 한 김애란 작가의 <가리는 손>은 전에 읽어본 작품인데, 김경욱 작가의 <고양이를 위한 만찬>, 편해영 작가의 <개의 밤>처럼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은 애매한 느낌?

기준영 작가의 <마켓>과 박민정 작가의 <바비의 분위기>는 어느 부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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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쪽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 테니까.

김애란, <가리는 손>

 

215쪽

 

가끔 아이의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걱정됐다.

김애란, <가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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