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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2017)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19. 10. 2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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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강고하다. 그 논의는 87년 헌법에서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회한과 이명박 정권 때의 트라우마가 중심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법조팀장 출신인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14대 이용훈 대법원장과 그 시절 '독수리 오남매'라 불리웠던 5인의 대법관들이 나아갔던 지점을 되돌아보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현재의 사법시스템(형사재판절차를 포함하여)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애매한 제목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책이었다. 아마 현행 16대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 책을 읽어보았을 것 같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법원행정처와 대법관을 거치지지 않은 양승태 15대 대법원장보다 13기수나 낮은 지방법원장 출신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수는 없었을거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2005~2011년까지 6년의 임기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고 지금도 기억나는 언론에 보도되었던 '설화'사건들을 떠올려보며,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8개월이 아닌 30년 동안 법관을 했다면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술 인터뷰를 채록한 부분들이 많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신영철 전 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떤 짓을 했는지도 생생하게 나와있고...)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취임 후 2년이 지난 시점까지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징계나 상고법원제가 아닌 상고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걸 보면 좀 아쉽다.

 

물론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8명의 대법관들의 면면을 보면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처럼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이뤄낸 것 같지만.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사법개혁과 신뢰 확보의 문제는 법원이 우선이고, 검찰은 부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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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양승태 코트(court) 들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특징은 전원일치에 있다.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08건 가운데 36.1%인 39건이 '13대0'이었다.
(중략)
주목해야 할 것은 대법원의 '13대0' 판결이 하급심 판사에게 주는 메시지다. 판례를 따르지 않거나 논란을 일으키곤 하는 하급심을 향해 '최고법원의 결론을 따르라'는 것이다.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법률 해석의 통일성만 돋보일 뿐이다.

 

117쪽

 

2005년 10월, 2006년 6월 두 차례의 대법관 제청을 통해 '독수리 5남매'가 만들어졌다.
(중략)
이들 대법관의 공통점은 법원 내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김영란, 전수안), 장기 법무관(박시환), 비서울대(김지형), 학생운동 경험(이홍훈). 주류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 그들을 진보 혹은 중도진보로 나아가게 한 것 아닐까.

다섯이라는 숫자는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전원합의에 참여하는 13명(법원행정처장은 빠짐) 중 5명만으로는 다수(7명)를 점할 수 없다. 하지만 1~2명을 더 끌어들이면 언제든 다수를 위협할 수 있다. 1명만 더 끌어들여도 6대6 구도를 형성해 마지막 13번째 의견을 제시하는 대법원장을 고민에 빠뜨릴 수 있다.
(중략)
과거에도 소수의견이 있었지만 1~2명에 그치곤 했다. 다수의견은 그 소수의견에 답하지 않은 채 무시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다섯은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다수는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했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보충의견을 통해 소수의견을 반박했고, 다시 소수의견 대법관들이 보충의견으로 재반박했다. 이용훈 코트의 전원합의체 판결문이 과거 대법원 판결문보다 몇 배 두껍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어조가 격렬하고 논쟁적이었던 이유다.

 

187쪽

 

이용훈의 법원행정처 개편은 한계가 있었다. 예산편성권이 없는 법원이 필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정부나 국회에 사실상 로비를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는 외부 입김이 들어오는 통로가 됐다.
또 검사들로 채워진 법무부의 검찰 중심 사법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정책 기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형사소송법 개정을 법무부 손에 맡겨놓으면 형사재판이나 영장 관련 규정이 검찰의 수사 편의에 맞춰 개편될 수도 있었다. 법원행정처라는 조직 자체가 필요악에 가까웠다.

 

196쪽

 

공판중심주의는 검찰 수사의 문제와 직결된 원칙이었다. 그간 형사재판의 중심 무대는 법정이 아니라 검찰의 조사실이었다. 검찰에서 조사 내용으로 수사기록을 만들면 법원에서 그 기록을 갖고 재판을 해왔다. 검찰이 사실상 1심 법원의 역할을, 법원이 사후심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런 체제가 굳어진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의 '조서 재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말을 모르는 일본 판사들이 일본어로 작성된 조서를 앞에 놓고 재판하던 관행이 그대로 이어졌다. 해방 후에도 조서재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 큰 문제는 수사기록이 철저히 검찰 프레임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그게 이 말 아니냐"고 다그쳐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신문조서를 작성했다. 재판에 들어가면 그 조서들을 앞에 놓고 사실 여부를 물었다. 피고인이나 증인이 "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유죄 판결을 했다.
변호사 시절 검찰 수사와 재판의 실상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이용훈은 형사재판의 원칙이 공판중심주의임을 재확인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는 판사들에게 "재판의 중심은 법정"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되풀이했다.

 

198쪽

 

(이용훈) "판결문 쓰는 데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재판을 길게 하고, 판결문은 간단하게 써라. 중요한것은 결론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재판 과정에서 납득시키려는 노력이다. 긴 판결문 받아보려고 재판받는 사람이 어디 있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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