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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판결과 정의(2019)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20. 2. 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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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자 아주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계신 김영란 전 대법관(2004~2010 대법관)께서 자신이 퇴임한 이후에 내려진 대법원의 논란이 많았던 (주로 전원합의체) 판결들에 대한 단상을 모았다.

 

로스쿨 강의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는데 책의 분량 자체가 많지 않아서 깊게 다루지는 않고 전직 대법관인 저자의 비평과 원론적인 제안 정도로 끝난다. 판례평석보고서와 같은 깊이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맞지 않는 책.

 

대법관 1명이 연간 3천 건이 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전원합의체 사건이라도 해도 대법관들끼리의 평의를 통한 토론이 이뤄지는 사건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법관이 사건의 결론을 정해놓고 담당 재판연구관인 판사에게 이를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어오라고 주문할 수는 있는데,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하는 기준이 불명확해서 하급심의 판결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상황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올해로 만 65세가 되는 김영란 전 대법관님이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을 인용하셨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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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근로기준법이 임금에 관한 사항을 대부분 강행규정으로 하고, 노사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강행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그 합의를 무효라고 한 것은 노사합의를 빌미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노사합의 당시 노사 양측이 법규에 대해 착오가 있었다는 이유로 강행규정에 위반된 합의를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본다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은 그대로 보전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계약주의의 예외를 정한 것이 강행규정인데 여기에 다시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예외를 인정한 것은 예외의 예외를 설정한 것과도 같다. 더구나 이 다수의견대로면 하급심에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면서 빚어질 혼란도 예상된다.

 

165쪽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데도 채무자인 국가가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근거는 국가가 시효를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가 신뢰하도록 한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다시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국가 측도 마찬가지로 보호되어야 하므로 피해자 측은 상당한 기간 내에 신속히 권리를 행사했어야 했다."라고 한 판결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미 완성된 시효가 되살아난다는 것인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면 피해자는 국가가 이제 시효이익을 원용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효가 진행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불확실하게 해둔 채로 상당한 기간 내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한 경우에만 국가가 시효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신의성실의 원칙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도록 판단한 부분도 지나친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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