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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2019)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19. 10. 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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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판사)분들이 쓰신 에세이를 종종 읽는 데다가 페친들의 추천이 많았던 터라 당연스럽게 보게 된 책. 하지만 저자 분이 변호사 출신으로 경력법관으로 임용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서두에 알고 나니 읽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그간 법관으로 시작했다가 변호사 생활을 해본 분들의 책은 봤어도 변호사로 먼저 법조 경력을 시작했다가 법관이 된 분이 쓴 판사(저자 분의 표현으로는 '판결공')에 대한 에세이는 처음 봤다.

 

책 전체에서 한껏 자신을 낮추시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판사 임용 때 들어온 같은 그룹 출신이 아닌 경력법관이 법관의 업무와 소회에 대한 대중교양서를 낸다는 사실이 같이 일하는 처음부터 법관으로 임용된 동료들의 구설수가 신경쓰이지 않으시진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책을 펴낸 박주영 판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검사내전>이 검사들의 직업생활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책이었다면 이 <어떤 양형 이유>는 법대에 법복을 입고 앉아있는 고고한 판사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해하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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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법원의 존립 기반은 국민의 신뢰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어떻게 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까, 모두 노심초사했지만 내가 보기엔 전부 부질없었다. 재판이 멈추지 않는 한 세상욕이란 욕은 법원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이치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또 그렇게 욕을 먹었으면 이력이 날 법도 한데 판사들은 욕을 먹을 때마다 다들 힘들어했다.

 

23쪽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159쪽

 

협의이혼 기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결혼에 대한 별생각이 다 들었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러 깨달은 건,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예지로 감행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했더라도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천천히 커지고, 작게 시작해 크게 여무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다는 것도 이상한 말이다. 확 타올랐다가 식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다. 결국 결혼은 저 사람이라면 계속 새롭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지에서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혼은 그 예지가 빗나간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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