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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철, 이병기] 까사 밀라(2018)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19. 11. 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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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가이드를 받는게 맞네요. 엊그제 <가우디 1928>은 꾸역꾸역 읽었는데 이 책은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가우디의 '까사 밀라' 주택은 파사드와 1층의 상점을 통해서 슬쩍 엿보기만 하고 입장해보지 않았습니다. 공동주택이라 비싼 입장료를 내도 일부 호실만 볼 수 있다고 했고, 유학온 학부생이었던 당시의 1일 가이드도 '까사 밀라'보다 '까사 바뜨요'를 추천했었죠.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한 '까사 바뜨요'가 아니라 가우디가 지은 마지막 주택이자 양쪽면을 이웃집과 맞붙인 합벽주택단지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공간이었던 남서향 모서리 공간에 지은 이 '까사 밀라'를 봤어야 했네요. 음울한 느낌때문에 저도 화사한 까사 바뜨요가 끌렸었는데...그 역시 계산된 색채의 사용이었고요.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ㅠ.ㅠ

 

비록 르 꼬르뷔지에의 아파트, 오스트리아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의 프랑크푸르트 주방처럼 이후의 시대가 요구한 표준화된 주거에 부응하지 못해 1930년경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지만 가우디는 시대의 제약 안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네요.

 

아래에서 인용한 183쪽의 설명을 읽으면서, 제가 지금 사는 주상복합아파트와 크게 보면 돌기둥을 구조재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철근콘크리트 내력벽을 사용했는지 말고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 부르주아 주택의 초기작이 까사 밀라 주택이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합벽주거블록에서 발생하는 모서리 공간에 주택을 건축할 때의 어려움, 까사 밀라 주택 대지가 위치나 기후를 봤을 때 얼마나 건축학적 난제였는지 이 책의 저자 이병기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어제 이병기님께서 왜 가우디를 모더니즘에 한발짝 발을 걸친 선구자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이렇게 미리 예습을 하고 나니 19일에 들을 '까사 밀라'에 대한 두 번째 강의가 기대됩니다.

 

목차대로 건축사진작가 황효철님의 사진을 보시고, 이병기님의 까사 밀라에 대한 설명, 그리고 도면들까지 보신 후에 다시 황효철님의 사진을 보니 본문을 읽기 전과는 보이는 게 다르네요.

 

1쇄만 찍고 묻혀버리기엔 정말 아까운 훌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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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쪽

 

에우세비 구엘 같이 유복하게 자란 2세대 산업자본가들의 등장, 전기와 철도, 자동차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발명, 오랫동안 도시 확장을 가로막아온 성벽의 철거, 그리고 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고민하게 한 새로운 도시의 건설. 19세기말 카탈루냐에는 수백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주체할 수 없는 변화의 열기는 곧 예수롤 표출되기 시작했다.

한편 카탈루냐는 진보와 번영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새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자신감은 곧 지역문화부흥으로 이어졌다.

(중략)
지역의 색채가 유럽 아르누보 유행과 결합하며 독특한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카탈루냐에서는 자연물을 소재로 삼아 건물을 화려하고 경쾌하게 장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스페인 본토와 확연히 구분되는 이 새로운 흐름을 '모데르니스마 카탈라'라고 부른다.

 

159쪽

 

10층 건물도 흔치 않은 낮은 도시(바르셀로나)에서 길도 널찍하게 놓고 블록 안쪽을 큼직하게 비우면서도 이 같은 밀도를 유지하는 비결은 옆집과 벽을 공유하고 일렬고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 구조 덕분이다.
다시 말해 바르셀로나의 공공 공간은 옆으로 창을 내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얻은 결과다. 양 옆을 막았으니 앞뒤로 열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주택이 합벽주거블록의 기본 유형이 되었다.

'앞뒤로 열린 길쭉한 집'은 바르셀로나 기후와 에이샴플라 도시구조에 맞추어진 주택유형이다. 탁 트인 남향집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런 집은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스페인처럼 태양이 뜨거운 나라, 특히 바다와 인접해 습도까지 높은 바르셀로나는 밝고 더운 집보다는 조금 답답해도 서늘한 집을 더 선호했다.
이상적인 환경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아침저녁으로 살짝 볕이 드는 집, 늘 바람이 통해 덥혀진 집안의 열기를 식혀주는 집이다. 앞뒤로 열린 집은 앞쪽 길과 뒤쪽 파티오 양편을 통해 적당한 채광 환기가 가능할 뿐 아니라, 두 곳 사이의 온도 차이로 인해 늘 어느 정도 바람이 흐른다.

 

163쪽

 

샴프라의 문제는 격자형 합볍주거블록이라는 도시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에이샴플라 세대인 가우디와 동시대 건축가들이 처음 당면한 새로운 과제였다.
블록의 네 모퉁이가 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밀라주택이 자리한 남서쪽 모퉁이의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 뒷면이 막혀 바람이 잘 불지 않는데다, 한낮의 태양과 해질녘 길게 드리우는 석양빛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집은 남서쪽으로 열려 있어 창을 열면 뜨거운 서향 볕이 깊게 파고들고, 창을 닫으면 앞뒤로 막혀 빛도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더구나 밀라 주택이 면한 남서쪽길은 바르셀로나에서도 가장 넓은 그라시아 대로다. 이 땅은 남족 뿐 아니라 서쪽 방향으로도 완전히 뚤려 있어 해지기 직전 늦은 오후까지 뜨거운 태양빛에 노출된다. 1년 365일 해를 피할 수 없는 이곳은 단언하건대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더운 주택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183쪽

 

밀라 주택은 돌기둥과 철골보를 조합한 기술적인 구조체계를 취했고, 시공에서도 공장 생산된 부재들을 현장 조립하는 경제성을 갖추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먼저 설치된 지하 주차장과 전기 엘리베이터, 라디에이터 난방기 등 최신 설비의 편의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유지보수 작업을 내다보고 가스관과 전기선 정비를 위한 지하 공동구까지 갖춘 최신식 건물이었다. 이는 단순히 최신 기술을 활용한 것을 넘어 설계, 시공, 사용 과정 자체에 대량 생산 시대의 사고와 경영 개념이 녹아든 '진정 새로운 시대의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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