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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2014)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0. 1. 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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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신축기와 수선기를 꽤 많이 찾아봤는데 한옥 대수선에 관해서는 이현화님의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와 황인범 대목장님의 이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이 가장 인상깊었다. 빌려서 읽었지만 소장해야지.

 

전자는 건축주의 입장에서, 후자는 시공자의 입장에서라 비교해보기 좋을 듯 싶다. 특히 많지 않은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구한 점과 내가 한옥에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인테리어 부분을 시공자가 별도로 건축디자이너를 참여시켜 완성도를 높인 부분이 훌륭하더라.

 

총 소요비용 1억 5천만원에서 서울시의 한옥 대수선 지원금으로 상당부분 충당을 했을거다. 참고로 지금은 <서울특별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조례> 제21조 제2항 제2호 가목을 보니 대수선 지원금이 최대 6천만원이다.

 

이것도 그나마 도시형 한옥을 개축하는 전문가들이 있는 서울이니 가능했을테고 지방에선 어림도 없지 않을까? 파우저씨가 고향으로 귀국하시면서 이 집을 파셨는데 '어락당'을 매수해서 사시는 분이 누굴지 모르지만 참 부럽다.

 

'어락당'은 대수선할 때 '전통 한국 건축의 하이라이트를 갖춘 1930년대 풍 현대적 도시형한옥'을 테마로 잡았다고 한다. 책에 등장한 사진들을 보면 대지 21평 건물 12평의 한계와 빠듯한 비용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낸 듯 싶고.

 

이런 20평도 안되는 작은 한옥 한채로 2~3인 가구가 현대식 생활을 하기에는 가전의 배치나 수납측면에서 거주자도 불편하고 한옥도 안예뻐지는 듯.

 

전에도 말했지만 전원생활을 생각하고 있고 한옥이 좋다면 차라리 20평쯤의 심플하게 지은 살림집을 안채로 쓰고, 기존 시골의 한옥 농가주택을 대수선해서 15~20평 사랑채로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황인범 대목장같은 분을 시공자로 모시는 게 가장 중요할테고.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란 법률도 있구나. 경주, 부여, 공주, 익산을 4대 고도로 지정하고, 이 지역의 경관유지 등을 지원하는 법률인데, 혹시 이들 지역에 한옥을 신축하거나 사서 개축하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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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쪽

 

한옥은 상세(실시)도면이 거의 없다. 도면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옥 지원금을 받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만드는 것이고, 지원금을 주기 위한 서울시의 심의는 한옥의 외부 형태에 좀 더 집중하기 때문에 내외부를 아우르는 도면을 갖추기가 어렵다. 여기에는 비용 문제도 있다. 건축주들은 대부분 한옥 공간의 상세 디자인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계사무소에서는 건축주가 요구하지도 않고, 비용을 지불할 계획도 없는 상세도면을 제출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세밀하게 디자인된 설계도면이 없는 것이 ㅣ상하지 않다.

(중략)

미감이 높지 않은 내 눈으로 보기에도 문화재(한옥) 전문 설계사무소들은 한옥의 전통적 구조와 외부 형태에는 탁월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 특히 인테리어 부분은 좀 취약해 보였다.

 

209쪽

 

(인테리어 담당 박지민 소장) 어느 집이나 화장실은 가장 구석에, 빛도 들지 않고 환기도 가까스로 되는 그런 자리에 배치하잖아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생각했죠. 조금 심각하게 말하자면 이건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어요.

사용하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만큼 비중을 낮춰서 디자인한다는 건 너무 기계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화장실에서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하잖아요.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물과 만나고 심신을 다듬죠. 때로는 일과에 지친 몸을 누이며 마당에 핀 꽃 한송이를 보고, 처마를 따라 흘러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12쪽

 

구조물을 지어올리는 데 지나치게 힘을 쏟은 나머지 막바지 공정인 도시가스관, 전기계량기박스 등은 그것이 대문 밖에 위치하면서 집의 인상을 상당 부분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 마감을 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318쪽

 

(건축주 파우저씨) 일단 많은 집을 봐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건축주가 기준이 있어야 시공사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한국어 자체가 언어학적으로 보면 콘텍스트가 풍부한 언어에요. 그래서 그냥 서로 알아서 아는 게 많아요. 그런데 서양 언어는 콘텍스트가 빈약한 언어에요. 콘텍스트가 빈약하다는 것은 말한 것에만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콘텍스트가 없어요. 그래서 서양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원하는 걸 하나하나 말을 해요.

(중략)

집을 지으면서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공자가 건축주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지만 건축주가 생각하는 그 기준을 하나하나 다 읽을 수는 없잖아요. 건축주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기가 원하는 집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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