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홀릭>으로 알게된 1930년대 한옥을 대수선해서 지은 '어락당'의 거주자 로버트 파우저씨의 신작.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신 분이 이렇게 한국어로 연거푸 책을 쓰시다니. 아무리 전공이 언어학이라지만 대단하다.
미시간 주 앤압에서 출발해 도쿄-서울-대전-더블린-구마모토-가고시마-교토-라스베가스-프로비던스를 거친 저자의 도시거주 기록에 런던과 뉴욕, 전주와 대구가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나는 저자 서문을 그리 유심히 읽는 편이 아닌데 이 책은 본문의 내용보다 서문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우리 스스로가 마든다. 그렇다면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지향점을 만들까를 생각해 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 첫걸음이 바로 자신만의 도시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나의 제안은 이 책을 계기로 삼아 독자들 스스로 '자신만의 도시사'를 기록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도시에서 태어나 어떤 도시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도시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며, 그곳들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도시와 '나'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내 도시사의 이력을 정리해보면, 전남 보성군 조성면 -> 광주 동구 서석동 -> 남구 봉선동 -> 서울 관악구 신림9동 -> 인천 중구 운서동 ->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2동 ->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 서울 관악구 신림2동 -> 경기 고양시 백석1동 -> 세종시 금남면 -> 세종시 다정동 이렇다.
내 의사에 따라서 살 곳을 결정한 것은 대학 입학 후였고, 많이들 그렇겠지만 학교와 직장과 같이 닻이 되는 장소때문에 주거를 결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필요가 아닌 내 취향에 따른 주거의 선택은 다음 번부터 일 듯.
행정과 국책연구타운, 조치원이라는 철도교통의 요지이자 원도심, 청주와 대전이라는 주변 대도시 사이에서 나는 다음 거주지를 어떤 곳으로 선택하게 될까?
책 말미의 혜화1117 출판사 이현화 편집자님의 세 페이지로 정리된 편집일지가 있는데,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런 간략한 일지가 책마다 들어가는 것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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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쪽
일본의 무기상 오쿠라 기하치로가 경복궁의 자선당을 해체해간 뒤 도쿄 오쿠라 호텔 안에 옮겨 세워 '조선관'으로 이름을 붙인 뒤 1917년경 공개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제국호텔을 짓기 위해 이 호텔에 머물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이때 처음으로 조선의 온돌 문화를 경험했고, 이후 온돌 방식의 난방에 관심을 보인 그가 1930년대 설게한 '유소니아식' 주택에 온수 파이프식 바닥 난방 시스템을 개발, 설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70쪽
최근 도쿄에서 좋아하는 곳을 꼽자면 단연 야네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울의 서촌과 비슷한 분위기인 야네센은 우에노 공원 북쪽 동네 야나카, 네즈, 센다기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중략)
야나카에는 야마노테와 시타마치가 함께 있다. 네즈와 센다기는 야마노테 문화의 시작과 맞닿아 있고, 야나카 동쪽인 네즈는 시타마치의 시작과 닿아 있다.
128쪽
그당시 내가 느끼기에 대전은 매우 편리하게 일상을 살아가는데 최적화된 곳이었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를 함께 꿈꾼다기보다 하루하루의 현재를 무사하고 편안하게 보내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 이전까지 나는 자신이 속한 도시를 역사적 공동체로 인식하기보다 각각의 개인들이 '현재'를 위해 살고 있는 도시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여러 도시에 살면서 나는 수많은 '대전'을 경험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의 대도시 인근에 형성된 신도시들은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324쪽
프로비던스는 보스턴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엄격한 분위기의 청교도로부터 뛰쳐나와 종교적 자유를 원하는 이들이 1636년에 세운 도시다. (중략) 프로비던스에는 브라운 대학교가 있는데, 1764년 세운 이 학교는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따지지 않고 학생의 입학을 허용했다. 이처럼 로드아일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일찌감치 보장하고 존중했다.
시작부터 보스턴의 '안티'같은 이유로 세워진 프로비던스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여러 면에서 보스턴의 그늘 밑에 유지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두 도시 사이에는 오늘날까지 묘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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