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칼레드 파흐미/이은정 역] 메흐메드 알리(2007)

독서일기/중동아랍

by 태즈매니언 2020. 1. 28. 21:31

본문

마찬가지로 임명묵님 덕분에 알게된 책. 한고조 유방처럼 한미한 동네 건달 출신으로 격동의 19세기에 이집트 최후의 왕조(1952년 나세르 대령의 군사쿠데타 전까지 존속)를 개창한 메흐메드 알리(1789~1849)의 평전이다. <오스만제국사>와 같이 오스만제국사를 전공하신 서울대 이은정 교수님께서 번역하셨다.

 

'무함마드'가 아랍식 발음이고, '메흐메드'는 터키어식 모음표기를 따랐다고 하는데 19세기 이집트의 지배층이 터키계여서 그 발음을 따랐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한국사 교과서에 <황성신문>의 위암 장지연이 1905년 서양 강대국에 의해 좌절된 약소국의 근대화 시도 사례를 참고하도록 <애급근세사>를 번역해서 널리 읽혔다고 본 기억이 난다.

(1889년 아이즈 번 출신의 일본인 시바 시로가 썼다고 함)

 

<애급근세사>는 메흐메드 알리부터 우라비 저항운동(이집트의 국권 수호운동이었다고 함)까지 다뤘다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던 백 년 전에 이집트의 근대화 시도까지 탐독했던 조상들의 심정이 전해지는구나.

 

이집트 왕국에 나일강 삼각주만 있고, 수에즈 운하가 시리아쪽에 있었더라면 영국이 굳이 이집트와 수단을 점령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이집트는 또 하나의 터키와 같은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터키보다 세속주의적인 국가가 되었을지도.

 

-----------------------------------------------

 

95쪽

 

1810년대에 파샤(메흐메드 알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일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더 깊게 만들기 위해 다시 준설 공사를 하라고 지시했고, 마르세유 출신의 프랑스 인 건축가 파스칼 코스트의 도움을 받아 이 거대한 계획을 진행했다.

(중략)

1817년에 시작된 이 공사는 완공되기 까지 3년이 걸렸고, 완성된 운하의 길이는 약 72km로 750만 프랑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이 공사는 메흐메드 알리가 이집트의 인력 자원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약 300,000명의 노역자가 끌려 나와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1/3에 가까운 노역자들이 이 과정에서 주로 과로, 기아, 불충분한 의료 조치 때문에 죽었다.

 

104쪽

 

마흔 살이 넘어서야 읽고 쓸 줄 알게 된 메흐메드 알리는 방문객들에게 자신에게는 책을 읽는 습관이 없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켰다. "내가 읽는 유일한 책은 사람의 얼굴이고, 나는 그걸 잘못 읽는 일이 드물어요."라고 경고하고는 했다.

 

158쪽

 

관료 체계가 발전하고 전문적인 관료들이 성장하는 데 열쇠가 된 것은 1844년 8월에 통과된 연금법이었다. 이 법령에 따라 파샤나 그의 가족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복무한 기간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이는 가문에 의한 통치에서 근대 관료제로 바뀌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70쪽

 

1845년의 전국적인 인구조사는 단지 가구만을 조사한 게 아니라 개개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것이었다. 이 인구조사에 관한 5,300권이 넘는 기록 대장은 이집트 국립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가구의 구성, 성별, 연령, 종교, 직업, 종족, 결혼 여부 및 일부다처혼, 이주, 신체 불구 등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센스가 완성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