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을 좋아하는 내향형 인간이라 방역을 위한 사회적 격리기간을 버티는게 남보다는 유리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도 바쁘고, 사람들을 못만난 기간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평소보다 책보기가 힘겹더라.
읽다가 그만둔 책이 여러 권 쌓여있는게 부담스러워서 여수시 작은 섬 포구에 작업실을 차린 김정운님의 친구인 멋들어진 아재. <생활명품>과 <심미안수업>의 저자 윤광준 선생님의 신작을 집어들었다. 다행히 기분좋게 완독~
큐레이터처럼 우리나라에서 가볼만한 애정하는 공간 스무 곳을 꼽아주셨는데 내가 가봤던 곳은 겨우 네 곳밖에 안되는구나. 그래도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처럼 내가 참 좋다고 느껴서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지인들과의 약속장소로 잡았던 곳들이더라.
그 네 곳의 공간에서 느꼈던 감동과 윤광준 작가님의 평이 그리 틀리지 않아서, 나머지 열 여섯 곳의 공간들도 지도앱에 저장해뒀다.
우리나라 도시설계와 공공 경관디자인의 쓰레기 집하장인 세종시에 있는 공간이 한 곳 소개되었길래 깜짝 놀랐다. 안그래도 봄이 오고 초록이 피어오르면 가보려고 몇 달을 기다렸던 곳이네.
나는 세종시에서 가볼만한 공간은 국립세종도서관하고 부강면의 유계화가옥(=홍판서고택)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곳쯤은 늘리고 싶다.
저자가 소개한 공간들 중에서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보안1942>와 남산 회현동의 <피크닉(Piknic)>, 부산 수영구의 <F1963 스퀘어> 이 세 곳의 복합문화공간은 꼭 가봐야지.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현 서울특별시장인 박원순씨가 사진을 보는 것도 참기 힘들 정도로 싫은 이유가 공공건축물의 가치에 대한 천박한 인식때문인데, 그래서 256쪽의 구절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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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
평소에 학생들로 점령된 듯한 우리나라 도서관의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다. 마치 수험생들의 공부방 같은 인상을 풍기던 도서관엔 가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지식과 정보, 사람이 만나는 마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 관공서 풍의 딱딱한 분위기 속에 열람실의 조악한 테이블과 의자를 보자면 오래 머무를 마음이 사라진다. 도서관은 건물의 외형보다 머무르는 내부가 더 아름다울 필요가 있다.
(국립세종도서관도 외관의 힘을 빼고 서고면적을 늘리고 이지체어들을 많이 가져다 놓았더라면 좀 더 괜찮았을텐데.)
146쪽
시민들에게 쉽고 편하게 고품위의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공급해 주면 예술의 관심과 애호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 게 교양이다. 교양을 갖춘 이들은 거칠어질 수가 없다. 기품 있는 사회의 모습은 거침을 벗어난 세련의 단계에서만 드러난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관련 분야의 깊이뿐 아니라 얼마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느냐에서 더 극명하게 갈린다.
256쪽
쓰임새가 모호한 공공시설은 날이 갈수록 흉물처럼 보인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은 어림도 없다. 그 모습이 싫어 근처엔 가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많다. 공공시설물은 도시 구성원 모두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을 만큼 예술성을 갖추어야 옳다. 시대의 역량을 모아 기대보다 멋지고 아름다우며 완벽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구조물은 치우는 일이 더 어렵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잘해야 뒤탈이 없다.
314쪽
어느 재벌가가 완공된 F1963을 돌아보고 몹시 아쉬워했다는 말을 들었다. 멋지게 변한 옛 공장이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려제강보다 훨씬 크고 오래된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창업 당시의 업종이 이어지고 당시 건물을 보존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고 있는 일의 확신과 자부심이 옅어서다. 바꾸고 버려도 괜찮을 것이라 여겼던 과거는 한번 바꾸고 버리면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후회는 언제해도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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