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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2020)

독서일기/독서법창작론

by 태즈매니언 2020. 7. 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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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니 추천도 잘 하리라 생각해서인지 종종 추천도서를 부탁받는데 가치관과 취향을 잘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아주 어렵다.

 

아내에게 인상깊었던 책들의 대단한 점들을 이야기하고는 책을 쥐어주기까지 해도 1년에 한두 권 읽던데 이런 내가 누구에게 추천을...

 

그래서 서평집들은 자기취향대로 아니면 그 분야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가치를 인정하는 책들을 다룬다. 악서를 고발하는 비평이 없진 않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남이 힘들게 썼다는 걸 생각하며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짧게 "볼 필요 없다"는 정도로만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베스트셀러 코너를 기웃거리며 책을 고르는 독서초보 지인들에게 권할 수 있고, 책읽기 습관을 축하할 선물로 알맞은 책이 나왔다.

 

저자 한승혜님은 매년 수백 권의 책을 읽는 독서가이다. 최근 5년 동안의 베스트셀러 28종을 꼼꼼히 읽어보고 쓰셨는데, 어차피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패션잡지 에디터에게 '1년 내내 동네 학교 교복들을 직접 입어보고 평가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독서가들이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몰라서 안한 게 아니다. 자기가 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

 

활자중독자들 비율이 높은 페이스북에서는 덜하지만, 인간이 정보를 얻는 수단은 다양하고, 유투브 등의 영상매체의 발달로 구전문화가 부흥하고 있는 시대에 왜 굳이 책이란 쇠락해가는 매체에 대해 유난들을 떠는지 마뜩찮은 사람들이 많을거다.

 

변명을 하자면 오감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는 여러 방식 중에서 내 후각, 미각, 촉각은 둔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화, 라디오나 동영상처럼 청각을 이용하는 수단은 '시간이 가둬지는' 제약이 불편했다. 활자는 내 자신의 속도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책’은 편집자가 여러 번 교정교열해서 정제된 활자들을 상당한 분량으로 완결성있게 정리하여 모아낸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직소퍼즐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책은 '확률적으로' 개별 조각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가장 크다. 미디어의 소비 단위가 한계효용곡선 위의 점처럼 갈수록 자잘해지는 상황에서 큰 장점이다. 물론 좋은 조각을 잘 골라내는 걸 전제로 하지만.

 

이러니 독서초보들도 읽어봤음직한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고력을 길러 좀더 살기 좋아지는 공동체가 되는 양분을 주는 저자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겠나.

 

아주 엉망인 책을 읽고, 이 책이 왜 엉망인지에 대해 '독서초보들이 훈계받는다는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목조목 설명하는 부분들을 보며 참 힘드셨겠구나 싶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한 서평에 질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감탄했다. 몰랐던 책인 <라틴어 수업>은 꼭 읽어봐야지.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28종의 베스트셀러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10권이었다. 괜찮네 하고 읽었던 책도 두 권 있었는데 승혜님 비평을 보니 내가 허술하게 읽었다는 걸 바로 깨닫게 되더라.

 

미리보기와 100원 결제 배틀로얄 시스템으로 K-pop 못지 않게 단련된 한국의 웹소설들이 빠르게 활자소비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구세대인 나는 직장생활과 육아를 경험한 (그나마 거리감이 덜할) 30대 여성의 이 책이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2000년대 이후의 출생자들에게 아날로그 책읽기의 가이드북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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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쪽

 

하루키의 소설은 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인물들을 데리고, 숨겨진 비밀 열쇠를 찾아 매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서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은 이상하게도 늘 여성들인 것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리고 그런 여성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남성) 주인공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하루키 소설의 주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294쪽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비로소 세상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고, 동물의 한 종류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공격성을 억누를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성'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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