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매슈 워커/이한음 역]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2017)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20. 9. 5. 22:27

본문

올해의 논픽션 후보.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숙면의 중요성과 숙면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들이 담겨 있지만 실용서는 아니고 수면의학과 뇌과학의 성과 보따리들을 500페이지에 아낌없이 풀어놓는 하프-벽돌책이다.

 

나는 평균적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은 6~7시간 정도고,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느라 평일에 실제로 자는 시간은 5~6시간이고, 3~4시간 밖에 안되는 날도 종종 있다.

 

평균 수면시간이 전세계 최저수준인 한국인답게 좀 적긴 하지만, 낮에 피곤해서 일이 제대로 안되는 날에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학대했는지 알겠다. ㅠ.ㅠ

 

지난 주부터 업무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못잤다. 수요일날 아침 7시에 출근했는데 오후 4시가 되니 도저히 일을 못하겠어서 바로 퇴근했다.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가벼운 저녁을 먹고 11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푹 잤다.

 

그랬더니 수요일날 일하는데, 내가 이렇게 똑똑하고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었나 싶어 놀랄 정도였다. 책상에 열 권의 책을 쌓아놓고 들춰보고, 인터넷 검색도 같이하면서 80페이지짜리 PPT 설명자료를 단숨에 완성했다.

 

그간 CDC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8시간의 충분한 잠을 추천한다는데 그동안 내가 2시간을 아낀 게 아니라 2시간 깨어있는 대가나나머지 깨어18시간 동안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판단력을 20% 이상 깎아왔구나.

 

이번 의사 파업 때 아는 게 없으니 입을 닫고 있었지만 소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서 허용하는 주당 최대근무시간 상한이 80시간인 건 하루 빨리 고쳐야할 미친 짓이라고 느꼈다.

 

1889년 존스홉킨스 병원의 외과 학과장이었던 의사 윌리엄 헬스테드는 6년이라는 전공의 수련기간(residency)를 계획했는데, 의사가 수술 실력과 의학 지식을 함양하는 일에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기간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자신이 며칠 동안 잠 한 숨 안자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는데, 사후에 헬스테드가 코카인 중독자였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가 초인도 아니고 주당 80시간 이상씩 교대근무하고도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잔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싶지도 않고. 저 주당 80시간이라는 기준이 미국 연방정부의 '전공의 수련 평가 위원회'에서 내놓은 기준이라지만 몇몇 EU국가에서 주당 48시간 이내로 아니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다른 근로자들처럼 주당 52시간 이내로 제한해야 하지 않을까? 수련병원들이 더 많은 전공의를 고용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용의도 있다.

 

2년 전에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운전자들의 격일제, 복격일제 폐지와 최소휴식시간(curfew)보장하는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건의했을 때도 충분한 잠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그리고 제발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잠을 허락하자. 사진으로 발췌한 세 페이지의 내용처럼 청소년의 수면시간대는 성인과 다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하지 말자. 밤늦게까지 학원보내고 독서실 보내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애들을 아침 5시 20분에 깨워서 6시 30분부터 자습을 시켰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밤 12시 50분까지 의무자습을 시켰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었는지. 참고로 그 때 학교에서 수능을 가장 잘봤던 친구는 아침과 저녁 자습 때 가장 많이 잤던 친구다.(침대에서 편하게 못자고 의자에 앉은 채로 자야했지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