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페친이 쓴 직업에세이 3일차. '토목엔지니어'와 '약사'에 이어 오늘은 '조현병같은 만성화된 정신질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의 책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몰랐는데 에필로그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요즘 같은 시기에 와닿는 표현이네요. 현실적인데 위로가 되는.
제가 고교시절 문과와 이과 중 진로선택을 할 때 이과에서 유일하게 끌렸던 직업이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사람이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잘 들어주는게 이렇게 중요한 직업을 택했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개업을 내켜하지 않았던 것도 온갖 의뢰인들을 상담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어줘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거든요.
저는 저자 이효근님의 명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감상글같은 빼어난 글을 쓰진 못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랑 성향이 비슷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심스럽고, 모험을 즐기지 않는 모범생 타입에 읽을거리에 탐닉하는 활자중독자. 좀 심심해서 재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 왜 효근님이 만두성애자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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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으로 나뉜다. 널리 알려진 환청이나 망상 같은 것이 양성 증상이고, 사고 빈곤이나 의욕 상실, 사회적 철퇴나 무감동증 같은 것이 음성증상이다.
(중략)
조현병은 만성화 단계에 이르면 양성증상 외에 음성증상까지 두드러지게 된다.
50쪽
정신과 의사는 듣는 사람이고, 말하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듣는 거싱며, 그 들음의 기본에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상담을 받는 사람이 천하게 둘도 없는 사기꾼에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정신과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54쪽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를 진단하고, 그가 그런 병에 이르게 된 이유(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를 추정하고, 그가 처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때로 나의 듣기는 그 자체로 치료적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절한 약물을 찾아내는 도구로 쓰여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나도, 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다시 듣는 수밖에 없다.
301쪽
태풍이 상륙하여 폭우가 몰아치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오로지 그 순간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비 올 때'가 아닌 '비 온 뒤'의 시간임을. 비가 퍼붓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간만을 고통이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비가 그친 다음 걸어야 하는 진창길에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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