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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윈 뉴랜드/명희진 역]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1993)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20. 3.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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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좀 오래된 책인데 제목에 끌려서 샀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처럼 주로 병원의 장막으로 가리워져 있어서 인식하기 어려운 죽음의 과정을 이런 전염병의 창궐 때 떠올려 보게 되는구나.

 

죽음이 있기에 인간은 삶의 무의미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내러티브가 발명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 역시 여느 대형 포유류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의사로부터 전해듣는 사망원인은 대부분 암, 고혈압, 폐렴, 동맥경화증, 자살,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 당뇨합병증, 알츠하이머 등 치매 등이다.

 

코네티컷 주에서 개업의로 40년 이상 일했던 의사 셔윈 뉴랜드는 자신의 가족들과 의사로 일하면서 지켜봤던 환자들을 차분히 관찰한 '과정'을 따라가다보니 신체의 전반적인 기능이 노화로 고장난 결과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느 의사들이 구구절절 밝히지 않고 생략했던 관찰기록들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보건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현격히 늘었다지만 백 살 이상의 고령자는 어차피 1만 명 중 1명 꼴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의 한 가지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도 나머지 기능들의 노화로 인한 파급효과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평균수명 이상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주치의와의 충분한 상의를 통한 존엄사의 선택권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신비로운 종교적 현상으로 이해하려다보니 사후세계에 대한 설정이 필요해졌던 고대세계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은 관찰하고 공부해야할 대상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종교라는 오래된 발명품과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체액설이나 기혈론을 더이상 믿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불명확한 감정적인 표현과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들도 많아 전미도서상을 받을 정도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굳이 꾸미지 않는 죽어갈 때의 현실적인 모습을 알고 싶어 했다는 뜻인 것 같다.

 

만성적인 대사증후군으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셨고, 뇌출혈로 응급실에 가셔서 한 달 넘게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마지막엔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면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완화치료가 아닌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치료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결국 쓰러지신 이후로 가족과 대화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저자께서 2016년 향년 83세로 별세하셨다는데 자신의 바람대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안한 죽음을 맞으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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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건강한 심장이 최대로 가동할 수 있는 박동수는 대략 일 년에 한 박동씩 자연적으로 감소하는데, 그 수치는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값이 된다. 예를 들어 50세 된 심장은 분당 170회 이상은 뛸 수 없다.

 

192쪽

 

출혈에 의한 사망은 단계적인 순서로 진행된다. 보통 처음에는 혈중 탄산가스 농도를 감소시키기 위해 호흡이 증대된다. 즉 혈액량의 감소로 인해 줄어든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서 심장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바삐 뛰기 시작하는데 이 때 심박수가 최고도로 오르게 된다. 혈액량이 더욱 줄어들면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져 관상동맥으로 오는 혈액량도 감소하게 된다. 심전도를 통해 본다면, 이 상태에서는 심근육이 질식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경동맥이 크게 손상될 경우, 이 과정은 단 1분 안에 끝을 맺고 만다.

 

215쪽

 

패혈의 요인이 농양 또는 수술 절개 부분에서 일어난 세균 감염일 경우에는 배액 요법으로 손상 부위를 회복시킬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오염 부위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증세는 순식간에 악화되기 쉽다. 상해 후 일주일 뒤부터는 보통 폐부종이나 폐렴으로 인해 호흡부전증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혈액 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패혈증의 첫 공격 목표는 허파이며, 간과 신장이 뒤를 이어 차례로 무너진다. 이렇듯 주요 장기들이 연쇄적으로 혹은 동시에 무너지는 까닭은 세균 및 독소를 뿜고 있는 침입자들이 혈액에 침투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순환하는 혈류에 섞여든 독소들로 인해 장기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것이다.

 

228쪽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와 그것을 시행할 의사 사이에는 평소에도 '관계'가 있었어야 한다. 그것은 안락사의 기본 조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환자 가족의 주치의가 안락사를 주로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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