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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리드먼/홍지수 역] 다가오는 위기와 지정학(2015)

독서일기/국제정치

by 태즈매니언 2020. 9. 2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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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한한 조지 프리드먼을 야바위꾼 취급하기도 하던데, 지정학 컨설팅을 하는 민간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1910년대 헝가리에서 태어나 아슈케나지 유태인으로 살다가 1949년 극적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로부터 시작하는 가족사이고, 2부는 지난 500년 동안의 유럽사에 대한 지정학적인 요약이다. 3부는 유럽연합의 비전이 힘을 잃고, 미국의 무관심, 러시아의 회복, 터키의 야심 상황에서 '독일 문제'의 재부상에 대한 나름의 예측이 담겨 있다.

 

2015년에 내놓은 3부의 예측부분이 핵심이랄 수 있겠지만 5년 후인 지금 시점에서 별로 틀리지는 않았지만 조지 프리드먼 자신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서술하고 있고, '독일 문제'나 '터키'에 대해서조차 큰 방향성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임팩트는 약하다.

 

저자가 로버트 카플란처럼 유럽의 변경지대들을 직접 탐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본 것도 아니고, 정치학 전공자다보니 에너지나 경제같은 지정학적 상황을 바꾸게 하는 힘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고.

 

하지만, 항해왕자 엔리케부터 이 책을 탈고한 2014년 상황까지를 요약한 2부는 한국인을 위한 유럽 근현대 정치사 입문으로 권하고 싶다. 특히 <먼나라 이웃나라:유럽편>의 세계관으로 시작한 나같은 사람에게. 유럽 각국 사람들의 대놓고 말하지 않는 집단적인 심리를 잘 포착해준다. 유럽에 대한 내 환상을 못박아준 책이랄까?

 

지금의 코로나19 위기가 화약고의 심지를 일시적으로 멈추게 했지만, 생존의 위기가 지나가고, 방역으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의 고통을 체감하게 될 때 유럽 각국의 몰락한 중산층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외한인 내가 봐도 유러피언 드림은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한국은 중국을 겨눈 불침항모이자 미국이 주도하는 핵심전략산업의 밸류체인에 끼어 있는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요즘 서유럽보다는 좀 더 미국에 가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주요 수출대기업들이 밸류체인에서 탈락하고, 시대착오적인 국제정치인식을 가진 세대들이 계속 정치권력을 유지하게 되면...

 

낭만적인 이념들은 집어치우고 국민국가의 이익에 기반한 전략을 짤 시간이다. 한동안 철지난 꼰대타령으로 치부받았지만 국민국가의 발전전략을 가장 잘 수행해온 게 한국이고, 지정학적으로도 국민국가로 살아가게끔 짜인 틀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 이걸 축복으로 받아들이자.

 

지난 22일 연평도 해안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지금의 국민국가 한국에 뭘 더 가져다 붙이려는 시도가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를 보여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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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쪽

 

빈곤층은 모든 걸 잃어도 삶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중산층이 모든 걸 잃으면 그들의 삶은 바뀐다.

(중략)

불가해한 세계에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해명을 지어내거나, 해답을 알 뿐만 아니라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까지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150쪽

 

혈통과 인종, 신화는 붕괴한 사회제도들이 남긴 공백을 메웠다. 혈통과 인종, 신화는 지친 사회 중추와 불능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혈통과 인종, 신화는 거리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맞붙어 그들을 압도했는데, 그와 같은 투쟁은 군인들이 동기부여하는 방식과 상당히 일치했다. 군인들은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모습을 해체하고 자신이 속한 부대의 영광스러운 과거, 소속부대에 대한 자부심, 조국의 탁월함에 대한 이야기들로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재건했다.

 

265쪽

 

독일의 경제 전략은 모든 가담자들이 오직 경제적 게임만 할 의향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일단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면 게임은 바뀐다. 독일이 순수하게 경제적인 수단만 써서 강제로 빚을 갚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경제적으로 항복하든가, 독일인들에게는 어려운 선택이지만 모종의 정치적 선택을 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독일은 유럽연합 틀 안에서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이상 실현불가능해지면 빚 게임에서 패배한 데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경제논리를 벗어나 다른 조치를 취해야하는, 독일이 원하지 않는 선택지로 점점 기울게 된다. 이게 독일이 처한 현실이다.

 

300쪽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카르파티아 지역과 다뉴브강을 낀 헝가리평원을 이상적인 완충지대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 지역들을 점령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사실 러시아인들은 점령을 하면 책임이 동반되고 이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르다가 소련과 그 전의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푸틴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들을 장악하되 가능한 한 점잖은 방식으로 장악했다.

(홍차배달이 점잖은 방식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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