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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자이한/홍지수 역]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2014)

독서일기/국제정치

by 태즈매니언 2021. 3. 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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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실세님께서 빌려주신 책. G2 혹은 G0(리더가 사라진 세계)가 많이 이야기되던 시절에 자신있게 미국의 지정학적 이점과 셰일 혁명, 인구 구조 등을 근거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림없을 거라 이야기했던 책인데, 2014년에 나온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후한 점수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원제가 내용과 안맞는 거 아닌지 싶네요.

 

저자 피터 자이한은 전달력 좋게 설명을 잘하는데, 학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정학 컨설팅회사를 차리길 잘한 것 같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 등 고대시대 사례부터 언급하며 근대 이전에 강과 바다를 통한 수운이 얼마나 독보적으로 효율적인 운송수단이었고, 큰 규모의 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는지 보여주면서, 미국의 강들과 5대호가 내륙수운에 얼마나 유리했는지 다른 대륙의 큰 강들과 비교해주는 앞부분이 책에서 가장 빼어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위치의 수력 외에 육상의 화물이동에 동원가능한 동력은 인력과 축력 밖에 없었고, 나침반이 없어서 풍력을 이용한 연안항해도 제한된 계절에만 가능했던 시절의 제약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았던 수운 중심지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했네요.

 

작년에 이스탄불에 갔을 때 흑해의 입구를 틀어막은 보스포러스 해협의 전략적 가치 외에도 정말 잔잔해서 궁전과 집 건물들이 해변에서 1m도 채 안되는 높이부터 시작하는 걸 보고 다다넬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의 잔잔함에 감탄했습니다. 바다긴 하지만 하상계수가 작은 내륙수로처럼 기능했으니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흑해에서 에게해와 지중해로 이어지는 무역을 장악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겠죠.

 

'세계에서 가장 긴,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인 미시시피강과 5대호와 이리운하를 다룬 <북미 대륙, 물의 역사>를 쟁여두고만 있었는데 빨리 봐야겠습니다.

 

피터 자이한의 시각은 운송비-원양항해-산업화-브레턴우즈체제-셰일혁명과 에너지자급-인구구조까지는 동의하며 읽었는데 앞으로의 지정학을 예측한 8장부터는 갸우뚱하게 되네요.

 

앞에서 주어진 요인들로는 미국이 고립주의에 빠지는 것이 필연적인 것 같지만 중국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기축통화국이자 첨단기술의 표준을 정하는 국가의 지위를 쉽사리 포기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트럼프 정권이 자이한이 말한 관점의 정책을 펼쳤지만요.

 

미국에 대한 이야기 외에 전세계의 국가들에 대한 평을 하는데 한국과 대만의 가치를 낮춰보고 태국과 미얀마, 스웨덴을 고평가한 부분은 7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많이 어긋한 예측이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 대한 부분은 이제껏 전혀 알지 못했던 통찰이었습니다. 셰일이 나지만 국외 수출은 어려운 앨버타 주가 어쩌면 미연방에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앨버타가 떨어져나가면서 온타리오가 더이상 퀘벡의 삥뜯기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지면서 국가로서의 캐나다가 붕괴될 수 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네요.

 

그나저나 국내 해군의 무리한 요구로 생각했던 경항모가 현재와 같은 촘촘한 국제분업의 자유무역 체계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는 국가인 한국이 미중대결 분위기에서 해운로의 안전이라는 공공재에 기여하는 헌신적인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산가능 인구보너스가 끝난 한국인 입장에서는 앞으로 인구보너스를 누릴 터키, 베트남, 멕시코와 같은 나라들이 부럽기도 하고,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정책도 없는 상황에서 개인들의 발버둥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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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쪽

 

원양 항해 혁명이 야기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효과는 향신료 교역의 변화도, 오스만 제국의 멸망도, 대영제국의 부상도 아니었다. 바다가 사지에서 일종의 거대한 강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373쪽

 

앨버타가 캐나다에 속해 있지 않다면 훨씬 나을 테지만, 독립국가가 되면 훨씬 안 좋아진다. 독립국가가 되면 앨버타의 화폐가치가 에너지 수출에 힘입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농업 부문을 필두로 다른 모든 비에너지 산업 부분들이 파탄나게 된다. 독립한 앨버타는 한랭기후의 쿠웨이트처럼 된다. 모든 국민의 삶이 단 하나의 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산업은 시들어버려 수입품으로 대체된다. 앨버타가 완전히 독립한다고 해도 앨버타의 에너지 운송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미국 국내 정치- 그리고 열 받은 캐나다인들-의 처분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미국과 합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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