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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 그 개와 같은 말(2017)

독서일기/국내소설

by 태즈매니언 2020. 10. 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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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님 덕분에 알게된 83년생 소설가 임현님의 단편집.

 

벌써 30년도 넘은 일인데도 어린 시절 질투심에 혹은 수치심에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을 헤집는 비열한 말을 했던 기억들이 매 년 몇 번씩은 떠올라 날 부끄럽게 만든다.

 

말로 나온 몇 마디 단어들의 뜻이야 별거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불행을 겪고 있는 상황을 잘 알면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는 생생한 기억은 스스로 부정할 수는 없더라.

 

우리는 타인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런 상태에서 이해나 위로랍시고 몇 마디 가벼운 말들을 건넨다. 잘 모르는 사이에서야 에티켓으로 선해될 수 있지만, 나와 가깝고, 내가 의지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귀찮음이 깔린 무성의한 말을 들었을 때 받는 상처,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은 생각보다 쉽게 올 수 있다. 발화자는 별 뜻 없는 몇 마디 말이 초래한 결과의 인과관계를 납득하기 어렵고.

 

조금 난해한 부분들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10편의 단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고 느꼈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형식적인 말들은 오히려 관계를 피로하게 혹은 관계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 뿐이다.

 

예쁘다. 사랑한다 이런 말보다 먹고싶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생율을 깎아서 먹어보라고 하는 것이 낫다. 크기가 큰 생율 몇 개만 깎아도 손아귀가 얼얼하다. 정교한 작업이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니. 그러니 오만 잔소리를 곁들이더라도 생율을 깎아주는 사람이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룸살롱에서 생율이 술안주로 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가씨들이 직접 깎아서 주는 건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한 게 아닐까?)

 

나는 등단 작품이자 표제작 <그 개와 같은 말>과 <고두>가 가장 인상깊었다.

 

말미에 나오는 황현경님의 작품해설과 내 감상을 비교해보니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더라.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하는 주례사 비평들보다 이런 서평을 자주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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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쪽 <말하는 사람> 중에서

 

너는 왜 그런 것들만 궁금해? 여름에 더운 집과 겨울에 추운 집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그런 건 묻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는 그냥 그런 거 몰라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왜 너는 남의 불행을 다 이해하는 사람처럼 구나, 왜 그게 네 것인 양 남의 걸 탐내나,

 

271쪽 <불가능한 세계> 중에서

 

"어떻게 너는 끝까지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은 거지?"

"말씀드렸잖아요. 걱정이 되서 그렇다고요."

 

284쪽 작품해설(황현경) 중에서

 

어떤 말들은 의미 없이 발화되지만, 모든 말들은 발화되며 의미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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