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세라 스마시/홍한별 역] 하틀랜드(2018)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1. 1. 17. 21:39

본문

직사각형 꼴인 미국지도에서 한 가운데에 있는, 토네이도가 잦은 시골 깡촌 이미지인 캔사스 출신 1980년생 여성의 가족사+지역사 에세이.

 

처음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같은 이름의 사람이 계속 나오고, 그 사람들이 워낙 결혼했다 이혼하길 자주 하는데다 수시로 이사를 다녀서 내용이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가계도를 보면 1922년생 '도로시'가, 1945년생 '베티'를 낳은 건 그럴만 하다 싶은데, 베티가 1962년생 '지니'를 낳고, 지니가 1980년생 '루(사라)'를 낳았다.

 

부모의 안정적인 양육 하에 고등교육을 마치고 직장을 잡고 가정도 꾸리고, 안정적인 환경 하에서 본인의 선택으로 육아를 선택하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 좋은 주인에게 입양되서 천수를 누리는 반려묘의 삶과 같다면, 하틀랜드의 증조모-조모-모친과 같은 소위 '독립적인' 백인 여성들의 삶은 도시에서 홀로 생존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길냥이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남자를 만날 때까지 대여섯 번의 꽝을 치고, 그 꽝이 된 관계에서 얻은 아이들을 건사하며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악전고투해야 하는 백인 노동계층 여성들의 삶도 충분히 버거운데, 25~54세 여성 대 남성 성비가 100대 83에 불과한 흑인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가혹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공화당과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혐오하는 '복지여왕'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이를 여럿 가진 흑인 미혼모인 이유 중 하나는 백인 여성에게는 결혼과 이혼이 선택지에 있고, 근근히 노동계급의 삶을 꾸려라도 갈 수 있지만, 어린 흑인 미온모들에게는 재혼의 가능성이나 공동체(캔자스의 '세라'네의 카톨릭 전통같은)의 지원 기회가 훨씬 희소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기 더 어려워지고.

 

캔자스주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기준으로 1.92로 50개 주들 중에서 7위로 상위권(평균은 1.73)인데, 복지 수준이 미국하고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한국의 같은 해 합계출산율이 반토막인 0.95인 걸 보면, 출산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장래 기회의 상실보다 혼외임신에 대한 낙인같은 문화적 영향이 큰 것일까? 한국도 비혼/비출산 증가와 20대 남녀의 인식격차가 문제라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임신하지 않겠다.'가 일부러 세워야하는 목표는 아니니.

 

그리고, 도로시-베티-지니의 모계 3대가 만난 미국 중서부의 백인남자들은 왜 이리도 괜찮은 사람이 없었는지. 남자의 뇌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인 상황을 견뎌내는 데 취약한 진화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 수컷들도 알파 메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좀 벗어나도록 진화되면 좋겠는데. 약물-과음-도박-가정폭력에 안걸리는 기준의 남자의 비율이 국가별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하고.

 

한승혜님의 감상과 같이 개인의 성공담이 기본 틀인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보다 성찰적이고, 가상의 상대방과 대화하는 2인칭 시점도 독특했다. 이 책을 15년 동안 준비했다는 저자 세라 스마시가 그녀 인생의 전반부를 정리하는 느낌이었는데 앞으로도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한다.

 

--------------------------------

 

62쪽

 

가난한 아이는 자기 삶의 고통뿐 아니라 부모의 고통도 제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아. 사실 그것도 이기적인 충동일 수도 있어. 어쨌든 부모가 살아남아야 자기도 살아남을 테니까.

 

116쪽

 

위험이 곳곳에 있는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삶은 몸뿐 아니라 뇌에도 흔적을 남겨. 뇌에서 원초적 공포를 느낄 때 싸우거나 도망하는 반응을 관장하는 편도가 커지고 그 상태가 유지되지. 만성 스트레스 아래에서 과도한 각성 상태가 계속되다 보면 신체에도 영향이 가는 거야.

 

285쪽

 

베티가 수없이 이사를 다닌 까닭은 판단력 부족 탓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어. 베티는 상황이 자신이나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해질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왔던 거지. 그랬어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상황에 의해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됐어.

 

287쪽

 

지붕이 새는 집에 산다면 책이 부족한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높고 교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치과 치료를 못 받아 이가 아파서, 혹은 배가 고파서 집중하기 어려울 거야. 이런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엄마 역할을 해. 학교가 집이 되고, 학교 식당이 난롯가 대신이야. 그런데 만약 학교가 삶에서 가장 안정적인 장소가 되었는데, 어른들이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면서 다시 한 번 옮기자고 한다면 정말 잔인한 일인 거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