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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토카레바/승주연 역] 티끌 같은 나(2014)

독서일기/유럽소설

by 태즈매니언 2021. 1. 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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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로 읽다보니 직접 찾아보기 보다는 안목있는 페친분들이 추천해주신 작품 위주로 보게 된다.

 

저자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1937년 생이고 1963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품을 발표한 유명 작가라는데, 이 중단편집에 수록된 다섯 편은 1991, 1993, 2003, 2007, 2014로 모두 개혁개방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내가 읽어본 구소련의 소설들의 배경은 가장 최근이 스탈린 시대에서 끝나서 개혁개방 이후의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배경인 건 처음이었다. 물론 개혁개방 이전 시기도 다룬다.

 

나는 <이유>와 표제작 <티끌같은 나> 두 편의 중편이 가장 좋았다. <이유>는 한국의 외할머니 세대를 떠올리게 했고, <올리브 키터리지>의 러시아 버전같다고 느꼈다. 게다가 주인공 마리나가 살던 곳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라 카프가스의 민족문제까지 소재로 다루고 있어서 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도 살짝 등장한다.

 

이 작품집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럴법한 이유에 따라 행동할 뿐 거대한 이념을 품은 사람이나 악인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벌어지는 사건들 자체는 전형적이지만 사건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생생하다.

 

서로를 후벼파는 말들과 저지르는 행동엔 자기 나름의 절실한 감정이 담겨 있고, 자신의 고집과 서로 부딪치는 감정으로 인한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강한 책임감, 그리고 역경 속에서 인간에 대해 별다른 기대 없이 자기 삶을 꾸려온 이들이 갖고 있는 낙천성이 어우러져 나오는 유머들이 한승혜님이 '여성판 체홉'이라고 평가한 이유인 듯 싶다.

 

그간 러시아의 지난 한 세대를 벼락부자 올리가르히들과 구체제에 살던 소시민들의 어려움,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 정도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소설을 보니 이 시기를 살아갔던 러시아 사람들을 집단이 아닌 개인 단위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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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쪽

 

모성애는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돈과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있고 아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힘만 든다면 스스로 사람이 아닌 비 맞는 한 마리 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305쪽

 

그런데 자주적인 성향은 무례함과 경계선에 있었다. 게다가 그 경계라는 것은 아주 얇았다.

 

341쪽

 

누구에게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하소연도 자기 일에 관심을 가져 주고 들어 줄만한 사람에게 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어머니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과거에 자신이 어떻게 괴로워했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머니에게 남은 건 조소뿐이었다.

 

370쪽

 

감사는 좋은 토양이다. 마법의 사랑나무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유실수 정도는 충분히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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