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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 땅을 샀나요? 절반은 오셨습니다.

아무튼, 농막

by 태즈매니언 2021. 2. 1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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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농막>

 

4화 : 땅을 샀나요? 절반은 오셨습니다.

 

세컨 하우스를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고 1년 반 동안 건축, 타이니 하우스, 전원생활, 인테리어에 관한 책들을 백 권 이상 읽었습니다. 유명 건축가들의 명작 주택 평면도를 보면서 나름대로 평면을 구성해 봤고, 구조재와 내외장재 선택도 고민해봤죠. 하지만 땅을 사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은 공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가 농어촌 주택을 포기하면서 반드시 폭 4미터 이상인 지적도상 도로에 접한 땅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지자,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심지어 40분 이내의 거리에 축사 근처의 논은 평당 15만원 정도에도 가능하더군요. 200평을 3천만 원에 매수할 수 있는거죠.

 

2020년 9월 초순에 예전에 제가 인사드리고 명함을 교환했던 젊은 이장님께서 농막용 땅을 팔겠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2020년 봄에 제 마음에 들었던 마을에서 이장님을 처음 뵙고서 4개월 동안 따로 두 번 찾아갔었고, 갈 때 2-3만원 상당의 빵이나 과자를 들고 가서 마을에 관심이 있음을 충분히 표현한 다음이었습니다.

 

이장님께서 본인이 2002년에 샀던 지목상 전이나 현황이 논인 626제곱미터(약 190평)의 농지를 평당 약 40만원 꼴로 8천만 원에 팔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사흘 내로 매수 의사를 알려달라시며, 살 의향이 없으면 공인중개사에게 매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통보하셨죠.

 

저는 다음날 바로 이장님과 그 땅을 방문해서 설명을 들었고, 마을에서 구매가 가능한 다른 땅 두 곳도 같이 돌아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그 날 밤 늦게 구매가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포기하려고 했던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맹지라 농막 외에 건축행위가 불가능하다.

 

2. 용도지역이 농림지역이라 개발행위가 제한되어 있고, 건폐율과 용적률이 낮아 추후 제방에 도로가 생기더라도 계획관리지역에 비해 투자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3. 지목이 ‘전’이지만 3-4년 정도 논으로 경작된 관계로 진흙이 많아 배수가 잘 안되고 지반이 물러서 성토가 필요하고 유실수가 자라기 힘든 땅이다.

 

4. 근처의 농림지역 밭 가격이 평당 15-45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다.

 

5. 소위 원형지라서 상수도와 하수도를 내가 해결해야 한다.

 

6. 땅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포장된 지방하천 옆 제방길 100m 가량을 진출입로로 이용해야 하는데 현황도로폭이 2.5미터라 차량의 교행이 불가능하다.

 

7. 땅이 마을의 바로 외곽이라 농가주택 두 채가 땅의 경계에서 30m, 50m거리에 위치해있다.

 

8. 땅의 높이가 마을을 관통하는 왕복 2차선 도로보다 약 2m가량 낮다.

 

9. 땅이 마을을 관통하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직선거리로 약 50m 정도로 인접해 있어서 차량이 지나가면 크진 않아도 소음이 들린다.

 

10. 동네 주민이 물건지와 붙어있는 하천부지를 점용허가 받아서 밭으로 쓰고 있어서 땅이 가로막힌 느낌이고 진출입하는 입구의 폭이 3.5미터 남짓 밖에 안된다.

 

11. 물건지의 지적도상 면적은 190평이지만 현황상 면적은 20평 정도 적은 170평 가량으로 보인다. 시골 문화상 외지인이 경계측량을 새로 해서 침범한 내 땅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

 

12. 남쪽에 지방하천이 붙어 있고 밤나무가 있어서 여름철에 모기가 창궐하기 쉽고, 물가는 습해서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다.

 

13. 사방이 농가주택과 논밭 뿐이라 경관상 장점이 없다.

 

이런 문제점들을 적어놓고 보니 사면 안되는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다음날 제가 가깝게 지내는 직장 선배님과 함께 그 땅을 방문해서 의견을 여쭸는데 괜찮은 땅이라고 사는걸 권하셨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에 같이 간 아내도 조금 비싸지만 지금까지 봤던 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사도 괜찮겠다고 말하더군요.

 

고민 끝에 이장님께서 주셨던 사흘 기한의 마지막 날 땅을 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후 부동산매매 표준계약서를 쓰고 계약금 10%를 지급했으며, 정부24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한 농지취득자격증명(농지법 제8조 제1항)을 미리 발급받았습니다. 1개월 후에 잔금 90%를 지급하고, 농취증 등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해서 그 날 직접 소유권 이전등기 신청까지 마쳤습니다.

 

 

사흘만에 땅을 사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어차피 주택을 짓지 않기로 했으니 맹지라서 주택 건축이 안된다고 해도 사용가치에 지장이 없다.

 

2. 저수지에서 물줄기에 내려오는 지방하천이라 물이 마르지 않아 모기가 좋아하는 웅덩이가 아니고, 제방길에 유실수인 밤나무들이 심어져 있어서 심미적으로 장점이 있다.

 

3. 지적도상 국유지인 ‘제’ 지목과 붙은 땅이라 현황도로가 없어질 상황이 생기지 않으니 안심해도 되고, 물건지와 현황도로 사이의 길다란 경작 중인 현황도로 ‘제’ 지목 국유지는 하천법 제33조에 따라 마을 농민이 점용허가를 받은 땅이지만, 농약 및 비료로 인한 하천오염 문제로 최근에는 하천관리청이 점용허가의 갱신에 엄격해졌다. 점용권이 상속인에게도 승계되긴 하지만 직접 경작할 의무가 있어 추후에 토지가 반환되면 약 30-40평 가량의 제방길 옆 땅을 사실상 내가 추가로 사용 가능해진다. 또 점용된 토지가 진출입구 이외의 통행을 가로막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사생활 확보에 용이하다.

 

4. 물건지가 현황도로인 제방길보다 1.5m 가량 높아서 배수의 문제가 없고, 왼쪽에 인접한 대지 및 밭보다 2m 가량 낮아서 국도의 소음을 차폐해주고 뒤편 농가주택 주민을 마주치는 시야각도 좁다.

 

5. 러시 아워에도 회사에서 40분 이내의 거리이고, 집에서는 출퇴근시간이 아니면 20분 밖에 소요되지 않으며, 마지막 시내도로를 나와 계속 쾌적한 국도를 운전하다가 1km만 지방도와 현황도로 100m를 이용하기 때문에 운전하기 편안하다. 교행이 불가능한 거리도 100m 밖에 안되고, 차량이나 경운기가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다.

 

6. 공주시에서도 행정구역상 세종시와 바로 붙어있는(연접한) 면지역이라 향후에 토지 가격 상승을 기대해볼만 하다.

 

7.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 모양의 땅이라 농막을 배치하고 사용하기 좋다.

 

8. 마을 바로 외곽에 있어서 세컨 하우스의 취약점인 보안 문제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9. 폭 2.5m의 진입로 옆에 장애물이나 건물이 없어서 덤프트럭 등 공사차량이나 농막을 운송할 7톤 트럭의 진입이 빠듯하게나마 가능하다.(밤나무가 도로를 침범하지 않음)

 

10. 이장님이 구매해서 소유했던 땅을 사는 거라 값을 깎지 않고 사면 이장님도 나를 도와줘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될테니 마을에 안착할 확률이 높아진다.

 

11. 농지 구매시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수인데, 비농업인 세대가 주말체험 영농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면적은 1,000제곱미터미만(농지법 제7조 제3항)이다. 그런데 시골의 농지 매물들 대부분이 이 면적보다 커서 지인과 공동으로 매수한 후 필지를 나누는 분필이 필요하다. 나는 농막과 4-5평의 텃밭, 나머지 유실수 식재 공간으로 쓴다면 150-200평이면 충분한 면적인데 딱 그 정도 면적이다. 토질이 나쁜 건 쿠바식 상자텃밭을 만들고, 유실수를 식재할 부분의 흙만 상토로 바꿔주면 된다. 프라이버시 확보를 고려하면 굳이 비용을 들여 객토로 높게 성토할 필요가 없다.

 

12. 옆에 있는 두 채의 농가주택과 2m 높이차와 30-50m거리로 이격되어 있고 강관에 능형망 울타리로 막혀 있으며, 한 채와의 사이에는 밭도 있어서 걸어서 교류할 일이 없다. 이웃집이 붙어 있는 느낌이 안든다.

 

13. 이 지역에서 근처에 축사가 없는 동네가 드문데 반경 2km 이내에 축사가 전혀 없다.

 

14. 마음에 든 마을은 행정구역상 ‘리’인데 마을 소개 안내판 정보로 85가구 167명이 거주(2013년 9월 1일 기준)하는 작은 마을이다. 토지 매물 수도 적고 세종시로 인해 이 지역의 농지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이며, 과거의 거래완료 매물 정보를 확인해보니 2-3년 사이에 평당 농지가격이 평균적으로 10만원 가량 올라서 다른 매물을 기다리기 부담된다.

 

15. 지방하천 맞은편은 제방길을 지적도상 도로로 만들었는데, 이쪽 제방의 2.5m의 현황도로도 지목이 ‘제’라서 수용으로 인한 토지보상금이 발생하지 않는 땅이라 향후에 지방도가 개설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지가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16. 전신주가 10m 거리에 있어서 전기인입신청시 추가 선로비용이 들지 않는다.

 

17. 직거래라 중개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첨부한 사진의 밭을 샀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나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가진 지인, 전원주택 건축을 고려하면서 여러 곳의 땅을 봤던 직장동료 부부, 전원주택을 매수해봤고 살아본 경험자분에게 이 땅을 보여드렸을 때 잘 산 것 같다고, 본인에게 기회가 왔더라면 자기도 샀을 거라고 하시는 걸 보면 괜찮은 거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장님께서 당시 다른 사업을 준비하시느라 돈이 필요하셨던 시기라 가능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산 땅이 소위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 농지법 제28조)는 아니지만 하천 맞은편의 계획관리지역과 경계에 위치한 용도지역상 ‘농림지역’이었는데, 며칠전인 2021. 2. 15. 공주시장이 도시계획변경고시를 해서 용도지역을 ‘생산관리지역’으로 변경했더군요. 당장의 이득은 없지만 기분 좋은 소식이죠.

 

이렇게 땅을 산 저는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남들이 다 짓는 6평 농막은 싫다며 요상한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데...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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