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농막>
7화 : 법위반의 유혹. 아는 게 병인지
이장님과 약속을 잡을 때는 의욕이 꺾인 상태였습니다. 10년이 넘은 2009년식 준준형 중고차 타고 있는 신세에 좋은 국산차 한 대 살 수 있는 돈을 탈탈 털고, 빚도 좀 내서 산 땅이 애물단지가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심란하더군요.
판단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냥 한 해 더 논농사 짓게 빌려주고 천천히 결정할까 싶었죠. 평소에 이장님께서 급할 것 없다고 천천히 하라시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도와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원래 농막은 농작업 중에 일시 휴식하거나 몸을 씻고, 비료, 종자,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목적이지 도시민이 주말 세컨 하우스로 쓰라고 만든 제도가 아닌데, 욕심을 내는 저 같은 사람이 사서 고생하는 거죠. 인정합니다.
주택수에 안들어가는 푸른 밭 한가운데 세워진 작은 오두막이라고 생각하니, 조금만 더 예쁘고 쾌적하게 갖춰서 친지들 초대해서 바베큐도 해먹고 자랑도 좀 하고싶은데 못하는 게 많습니다.
1. 정화조 설치하려면 2제곱미터 면적만큼 농막 설치면적에서 차감해야 해서 18제곱미터로 안그래도 작은 공간이 더 답답해지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벽체중심선 기준으로 이 면적을 넘으면 안됩니다. 높이는 다락방을 두더라도 4m 이하로 합니다. 저상 트레일러를 쓰면 혹시 모를 운반 중 파손을 우려해서 10cm 여유를 둔 3.9m로 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이 높이면 다락방에 있을 때 박공 지붕 한 가운데서만 겨우 서있을 정도입니다.
2. 논이나 밭은 지반이 당연히 연약한데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하면 안되고 6-8개 가량의 주춧돌로 점기초만 잡아야 합니다. 장마로 흙이 유실되고 겨울에 땅이 얼었다가 녹으면 부등침하로 농막의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면 바닥이 기울어지고 구조체가 파손되거나 휘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종종 수평계로 확인하고 유압잭과 얇은 철판을 이용해서 높낮이를 조정해둬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3. 기초 콘크리트와 바닥 방통치기를 못하니 바닥에서 일년 내내 한기와 습기가 올라오고 노출된 배관이 겨울철에 동파되기 쉽습니다. 열선을 감아서 동파 방지를 하는데 야외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화재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지된 걸 알면서도 콘크리트 바닥기초를 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4. 벽체중심선에서 1미터 미만으로만 처마를 빼야지 건축면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데(건축법 시행령 제119조 제1항 제2호 가목), 공장에서 사전제작 후에 트럭이나 트레일러로 이동하면 차로 폭 때문에 너비가 3미터를 넘으면 안되서 허용된 처마를 누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1미터 이내의 처마라고 해봤자 현관이나 외벽의 눈비도 못가리는데 말이죠. 직사광이 눈부시게 들어와 불편하고 여름에 더 덥습니다. 외장재를 목재사이딩을 사용할 경우 들뜨거나 좀 더 자주 스테인을 발라줘야 합니다.
5. 생활하다보면 참다못해 나중에 아연각관으로 기둥과 처마를 만들고 그 위에 복층PC판을 깔아서 테라스 공간을 만는데, 그럼 건축면적이 20제곱미터를 초과하게 되서 농지법 위반입니다. 정 그늘이 필요하면 관리하기 신경쓰이는 차양(어닝)이나 그늘막(퍼걸러)를 만들어야죠.
6. 그나마 공주시는 농막 정화조를 하용해주는데, 수도권 등 많은 지자체들은 가설건축물로 3년마다 갱신 신고해야 하는 농막을 건축물과 달리 취급해서 정화조 설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막 정화조 허용 요청 민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민신문고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농사 짓다가 생리현상을 생태화장실, 인도식 야외배변, 사는 집이나 이웃집 화장실에서 해결하라는 거죠. 이때문에 캠핑카처럼 분뇨저장탱크를 달고 출고되는 농막 제품도 있습니다.
7. 경기도 이천시와 같은 지자체는 농막 형태가 컨테이너 모양인 경우에만 가설건축물 축조 신고를 받아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고를 수도 없는거죠.
8. 농막 둘레 목재/석재/합성 데크를 당연한 것처럼 설치해서 실내와 야외의 전이공간으로 사용하는데 농지법과 건축법령에서 농지에 실외 보행공간인 데크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지자체 공무원이 농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해서 농지로 원상복구하라고 통보하면 철거해야 합니다. 제 생각엔 농작물을 말리는데 쓰이는 평상은 일종의 야외용 가구이니 가능할 것 같지만요.
9. 무엇보다 농막은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하는 곳이지 숙박을 하는 곳이 아니니 장박을 하고 주택처럼 사용하는 것도 안됩니다.
10. 농지에 조경수나 관상용 꽃을 심으며 정원처럼 사용하는 것도 농지법 제10조(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는 농지 등의 처분)에 위반됩니다. 조문명도 무섭습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21조 제1항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이 농지법에 따라 관할 지자체장이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소유한 농지를 처분하도록 명령하는 근거가 되죠. 주권자가 농지를 이렇게 귀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가설건축물 축조신고도 하지 않고 농막을 가져다 놓고 쓰시는 분들도 워낙 많은데, 이게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 대상(건축법 제111조)이라는 것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또, 정화조 설치시에 읍면사무소에 정화조 설치 공사 신고 후 시군에서 허가받은 업체를 통해 정화조를 매설하고 공사가 완료된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데, 그냥 굴삭기로 땅을 파서 사진과 같은 여과 기능이 전혀 없는 똥통일 뿐인 정화조를 묻고 그냥 사용하는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행위입니다.(하수도법 제80조 제4항 제10호, 제34조 제2항) 1년에 이 조항으로 처벌되는 농막소유자가 몇명인지 궁금하지만요.
정화조 바닥에 쌓인 오니가 오래되면 딱딱해져서 관로를 막을 가능성이 높아서 정화조를 1년에 한 번씩 청소할 의무(하수도법 제80조 제4항 제12호, 제39조 제2항)가 있는데, 이를 어기는 것도 마찬지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대상 행위입니다.
그런데 농막은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지도 않고, 1~2명이 주말에만 주로 가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길도 제대로 없는 곳까지 분뇨수거차를 불러서 매년 농막 정화조 청소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인력이 한정된 지자체가 위의 사항들을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을지 회의적이게 되더군요.
이런 거 다 지키려고 굳이 큰 돈 들이고 정성껏 꾸밀 필요가 있나, 좀 위반해도 괜찮은지 이장님과 만난 자리에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공무원이 불시점검할 일은 없으니 누가 신고만 안하면 되니까요.
법경제학에서 보듯 범죄행위도 합리적 기대에 따른 손익 계산의 결과로 기대이익이 기대비용보다 클 때 저지르는데, 암수범죄가 적발되어 처벌될 확률이 낮고, 과태료가 부과되더라도 소액이면 지킬 사람이 많지 않겠죠.
알아보고 공부하는 게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어서 이장님께
“이장님, 이런 거 다 지켜야 합니까?”
라며 여쭤봤습니다.
이장님 눈빛이 뭔가 아련한 것 같더니 햇밤 먹어보라며 생밤을 깎아주시네요. 우둑우둑 깨물어 먹으며, 해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8화에서 계속)
농막에 데크가 조심스러울 때는 높이를 맞춘 평상을 여러 개 붙여서 쓰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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