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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 시골에 살면서 살해당하지 않는 법

아무튼, 농막

by 태즈매니언 2021. 2. 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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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농막>

 

8화 : 시골에 살면서 살해당하지 않는 법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이자 40년 경력의 귀농인 마루야마 겐지씨는 <시골에 살면서 살해당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시골 생활의 정점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입니다. 신축 기념, 이사 기념, 새 출발 기념을 하려고 도시에서 사귄 친구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바비큐 바티를 연 날이 행복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장님이 입을 떼십니다.

 

"한별씨, 직업이 공무원이라(공무원 아니고 공공기관에서 일한다고 소개했는데 착각하신듯) 혹시 신변상 무슨 문제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유."

"전에 우리 마을 같이 둘러봤을 때 한 눈에 보이는 농막만 열 개가 넘었쥬? 신고도 안한 농막도 많은데 제가 지난 10년 동안 누가 신고해서 벌금이나 과태료 물었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유."

"공무원들이 누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현장에 나오지도 않고, 혹시 현장에 나와봤자 일단은 원상복구 하라고 기회를 줘유. 잠깐 치웠다가 나중에 다시 가져다놓으면 되쥬."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되유. 지나가다가 어르신들한테 인사만 잘하시고, 비닐쓰레기같은 거 밭에서 태우지만 마셔유. 우리 마을도 울력은 일년에 서너 번 풀베기 두어 시간만 같이 하는 거 밖에 없어유."

 

(급 밝아진 얼굴로)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르신들 중에 좀 까다로우신 분들이 있어유. 젊은 사람들하고 아무래도 생각이 다른 데 그건 좀 어쩔 수 없나봐유. 뭐 어쩌겠어유.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몇 명 되지 않다보니 한별씨같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유.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인사하러왔을 때 마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명함도 줬던 거에유."

 

"이장님, 그럼 어르신들의 어떤 점을 조심하면 될까요?"

 

"고집이 쎄셔서 그렇지 별 거는 아녀유. 아니 내가 예전에 OO나무 묘목을 몇 만원이나 주고 사서 우리 집 출입문 앞 내 땅에 심어놨는데, 옆집 어르신이 '나무가 자라면 우리 집에 그늘 생긴다'고 뭐하고 하시데유"

"그래서 내가 '아이고 어르신 저 묘목이 자라서 어르신 댁 담장 너머로 그늘을 드리우려면 20년은 걸리겠슈'라고 말하고 넘겼는데, 아니 얼마 뒤에 보니까 잘 자라던 묘목이 갑자기 노랗게 말라서 죽어있더만요. 죽을 이유가 없는디 보니까 퍼런 색이 보이는 게 농약을 뿌렸드만유."

 

"........"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회사다니다가 마을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에요. 저 위 저수지에 유료낚시터 있는 거 봤쥬? 근데 그 낚시터 운영자가 배쓰 낚시꾼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서 낚시꾼들이 버리고간 쓰레기는 하나도 안치우는거에유. 스티로폼이 막 둥둥 떠다니고 보기 안좋았는데,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이 좀 말해달라는 거에유."

"그렇게 부탁하시니 내가 총대를 섰쥬. 그 때가 5년인가 허가기간이 끝나가서 갱신을 신청하려는 시점이었거든유. 나는 친한 형님이 그 낚시터하시는 분하고 아는 사이라 쓰레기 좀 잘 치우라고 하고 상관 안하려구 했어유. 마을에 내려온지도 얼마 안되었을 때라."

"그런데도 어르신들이 자기들은 그런거 못한다고 하도 부탁하셔서 제가 시청에 가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지 허가 갱신해주지 말라고 오염증거도 모아서 제출하고 마을사람들 서명도 모아서 내고 그랬어유."

(낚시관리 및 육성법 제10조 제1항, 제18조 제2항)

 

"고생하셨네요 이장님"

 

"그런데 그 낚시터주인은 내가 어르신들 선동해서 낚시터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앙심을 품지 뭐에요. 아니라고 하도 성화셔서 해드린거라고 말해도 안통했어요."

"내가 처음에 완전히 내려오기 전에 한별씨처럼 농막을 갔다두고 왔다갔다 했거든유? 3M*6M는 좀 답답해서 3M*7M로 만들었는데 그걸 누가 신고한 거에유. 그래서 공무원이 나왔길래 한 달 안에 철거하겠다고 말하고 저번에 본 그 예전 우리 집 마당에 가져다놓은 거에유."

"그리고 내가 지은은 힐링농원 수련장이 왜 한별씨가 처음 왔을 때 운영을 안하고 있었냐면은 누가 처마길이가 1미터를 넘었다고 신고해서 1미터 넘는 부분을 철거하느라 그랬던거에유."

"나한테 뭐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도 아닌데 속상하쥬."

 

힐링농원 수련장 건물 안 테이블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테이블 위에 공주시에 제출할 마을발전사업 제안서 출력한 것들과 제안서 내용에 대한 인근 지역 교수들의 자문의견서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들으니 참.

 

지난 여름 복날 즈음에 아내와 같이 막걸리와 소주 한 박스 사서 차 트렁크에 넣고, 이장님 뵈러 갔을 때, 이장님 수련원 마당에서 코스트코 테이블 펴고 김치전 부쳐먹던 여섯 분들이 혹시 이 마을 청년 전부였던가 하는 생각이 스쳐가네요.

 

부모님 대부터 이 마을에 사셨던 토박이한테도 이렇게 하는데, 아무 연고가 없는 외지인인 나와 척지건 숨 한 번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일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신고한 사람하고 본인소송하면서 싸워야 하나? 하는 생각에 복잡해지고요.

 

역시 농막이 답이었습니다. 동네가 맘에 안들면 지게차로 떠서 7톤 트럭에 싣고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되니까요.

 

(9화에서 계속)

 

참고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2014),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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