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참 잘 만든 영화다. 제니퍼 로렌스는 최고의 캐스팅이었고.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읽는 도중에 순간순간 영화 속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했고, 이미 영화를 통해 스포일러를 당한 상태라는 게 아쉬웠다. 이 책을 먼저 읽고나서 영화를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관객수는 많이 줄었겠지만 이 원작소설을 좀 더 살려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티파니가 팻에게 자신의 상처를 말해주는 것도 결말부분으로 옮기고.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진 늦은 밤 크리스마스의 기적 부분 빼고 다 좋았다. 원작에선 팻을 빡돌게 만든 음악이 내가 좋아하는 <My Cherie Amour>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그냥 팻과 티파니가 참여한 ‘우울증 탈출 댄스 경연대회’의 명칭을 영화에선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게 아쉽네.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다보면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망각을 통해서 자신을 과도한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무의식 기제가 있다고 들었다.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모두가 바보같은 행동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처신의 결과로 인해 나락에 빠져 있는 사람의 장점을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때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 얼마나 될까? 평생 고집불통에 자기 맘대로인 팻의 아버지와 그로 인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희생한 하는 팻의 어머니를 보면 니키와 팻처럼 보기 좋지 않은 모양새라도 관계를 끝내는 게 차라리 다행이지 않을까?
근데 저자 매튜 퀵은 Kenny G를 얼마나 싫어하길래 이렇게 엄청나게 많이 등장시키는지. 읽는 사람들까지 케니 지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킬 듯 싶다.
결말 부분이 넘 좋아서 그대로 옮겨본.
여러분 영화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은 지금도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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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쪽
"당신이 필요해요, 팻 피플스. 젠장, 죽을 만큼 필요하다고요!"
그녀는 내 목에 부드럽게 키스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내 살갗에 떨구었다.
보통 여자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과는 사뭇 달랐지만, 분명 솔직한 말이었다. 티파니를 안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처음에 티파니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면서 그녀를 떼어 내려 했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너한텐 친구가 필요해. 누구나 그렇단다."
티파니가 오랫동안 나를 속인 일도 생각났다. 티파니가 왜 직장에서 쫓겨났는지 로니가 내게 해 줬던 충격적인 이야기와 그녀가 최근 편지에서 고백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티파니와 내 우정이 얼마나 괴이하게 진행돼 왔는지도 생각났다. 그러나 니키를 영원히 잃어버린 내 마음이 어떨지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티파니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니키가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이제 내 품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믿기 위해서 지독히 괴로워하고 절망했던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내 품에 있는 여인은 내게 <천체 관측자의 구름 도표>를 준 여인이고, 내 모든 비밀을 아는 여인이고, 내 정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아는 여인이고, 내가 얼마나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는 여인이고, 그런데도 내 품에 안기는 여인이다.
이 모든 것에는 그녀와 나의 솔직함이 배어 있다. 더구나 눈보라까지 치는 꽁꽁 언 축구장 한가운데에 나와 같이 누워서 비층구름이 토막구름으로 자유로이 흩어지길 기다리는 불가능한 희망을 공유해줄 여인은 세상에 티파니밖에 없을 것이다! 니키라면 나를 위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기분 좋은 날에도.
그래서 나는 티파니를 좀 더 가깝게 끌어당긴 다음 완벽하게 손질된 그녀의 눈썹 사이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나도 당신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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