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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디아스/권상미 역]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2007)

독서일기/북미소설

by 태즈매니언 2024. 5. 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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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받고서 간만에 소설을 좀 읽어보자고 샀지요. 4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이 장편소설을 읽는데 이주일이 넘게 걸릴지는 몰랐습니다. 아마도 2008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이 아니었더라면 포기하고 덮었을 것 같네요.

오스카의 대사에서 언급되는 SF나 TV프로그램 이야기나 비유하는 맥락을 이해할 수 없어 힘들었는데, 저자 주노 디아스와 동년배인 60년대 후반생이거나 70년대 초반생의 미국인에겐 달랐나 봅니다.

마르께스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미국 이민자 1.5세대로 태어나서 21세기에<백년 동안의 고독>을 썼다면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싶고요. 번역자 권상미님께서 정말 고생하셨겠다싶고, 간간히 탈북자 문학이 호평을 받는 정도인 우리나라에서 베트남계 이민 1.5세대가 쓴 소설이 이상문학상을 받는 일이 언제쯤 생길까 궁금해졌습니다.

독재자 트루히요의 시대에 부유한 집안의 성공한 의사였던 '아벨라르'부터 셋째 딸 '벨리', '오스카'와 '롤라'로 이어진 카브릴 가문 삼대의 이야기가 여러 시대를 오가며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 도밍고와 미국 뉴욕 근교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역사와 사랑, 일상에 종잡을 수 없이 끼어드는 우연은 '푸쿠(fuku)'라는 도미니카인들이 믿는 재앙의 작용임을 믿게끔 묘사됩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해서 제가 아는 거라고는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섬을 아이티와 함께 양분하고 있고, 산림녹화가 잘 되어 있으며, 막장국가인 아이티보다는 괜찮은 나라는 정도밖에 없었는데, 포르투갈 현대사를 알려준 <리스본행 마지막 열차>처럼 전혀 몰랐던 인구 천만 명 남짓의 작은 나라 도미나카 공화국의 현대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30년 넘게 나를 사유화하며 철권통치를 한 악당 독재자 '엘 헤페' 트루히요(나무위키 참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나라였더군요. 이민자를 수출하고 이들의 국외송금 이전수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카리브해의 필리핀같네요.

이틀 전 공주 밭에 갔다가 벌집을 짓기 시작한 쌍살벌 여왕벌을 발견했었습니다. 막대기로 벌집을 뜯어서 멀리 던져버리니 날벼락을 맞은 여왕벌이 침입자를 찾아 붕붕거리더군요. 오늘 오후에 다시 밭에 갔는데 이 비가 내리는 와중에 이틀 전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벌집이 다시 생겼더라구요. 어쩌면 다른 여왕벌일 수도 있는데 왠지 엊그제 그 녀석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에는 여왕벌을 후려쳐서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흙 속에 묻은 다음에 못나오게 지그시 밟아줬습니다. 이런게 쌍살벌 입장에선 푸쿠(fuku)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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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쪽

평균적인 도미니카 남자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트루히요는 그보다 오천 배쯤 더 나쁜 놈이었다. 그 인간은 다음번 아랫도리를 찾는 일만 전담하는 첩자를 전국 방방곡곡에 수백 명이나 두었다. 트루히요 정권에서 아랫도리 조달사업이 조금만 더 중요시되었다면 정권읜 세계 최최의 '아랫도리 공화국'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최초의 아랫도리 공화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풍토이다보니 딸과 아내를 숨겨두는 건 반역죄에 해당했다. 딸들을 뱉어내지 않는 자는 범법자였고 곧 여덟 마리 상어와 멱을 감는 신나는 체험을 즐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309쪽

옛날에는 백인 아이들은 고문을 도맡아 했는데, 이제는 유색인 아이들이 그 일을 했다. 오스카는 때로 피해를 당한 아이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있잖아, 이 세상에 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하지만 괴물이 제일 원치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다른 괴물이 내미는 손길인 법니다. 이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오스카를 황급히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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