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농막>
16화 : 평면 설계의 끝
지난 2월 15일 정했던 평면도와 옵션사항을 바탕으로 견적서를 받고 계약까지 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설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충분히 고민해서 세운 계획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농막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어떤 공간으로 꾸미고 싶은지 되짚어보게 되더군요.
제가 꾸미려는 공간에 놓을 가구들에 대한 정보를 마룸 정실장님께 전달해드렸더니 '아늑한 공간이 아니라 가구 쇼룸에 온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제가 봐도 그렇더라구요. 가구들을 감상할 뿐 편히 쉴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디자인을 뽐내는 가구들이 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으니.
그래서 꼭 필요한 가구들이 뭔지 꼽아보니 가리모쿠 슬리핑 소파, K체어, 스툴, 접이식 테이블 겸 식탁, 트롤리, 원목 데스크 의자더라구요. 여기서 탈락한 가구가 슬리핑 소파 다음으로 큰 부피감의 '보쿠즈 소파 테이블'이었습니다. 제가 넣으려는 가구 중에서 정가 기준으로 가장 비싸고 디자인이 독보적이어서 아쉬웠지만 실용성이 제일 낮은 가구였으니까요.
소파 테이블 공간이 부족하면 집에서 쓰는 티크 네스팅 테이블 중 하나를 K체어의 옆에 붙여두고 사이드 테이블처럼 쓰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이 설계에 들어가지 않을지 몰라도 제게는 매우 중요한 조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꾸미려는 전체 공간에 대한 디자인과 이용 계획에 대한 설명도 요청하셔서 정실장님께 자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실장님께서 마룸의 전시장에 있는 리버티 9평 모델에 있는 것 같은 공간의 전이가 자연스럽도록 만들어주는 비가림 공간을 무료 시공해주시겠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건축면적에 들어가지 않는 1미터 미만의 처마공간인데 현관이 벽에 바로 붙어서 노출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농막의 첫인상이 확 달라질 것 같습니다. 현관문 옆으로는 자주 사용하고 길이가 긴 농기구를 거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매우 요긴할 것 같습니다.
제가 주문한 마룸의 신형 리버티 모델은 마룸의 대표자 부부가 7년 동안 큰 범주로 여섯 가지로 구분되는 수십 채의 이동식 주택과 농막 모델을 제작하고 그 안에서 직접 살아보면서 두 부부의 메인이 되는 9평 살림공간으로 시제품 제작된 모델입니다. 화가의 아틀리에 별채로 들어온 선주문이 있지만, 농막으로는 처음 출시되는 모델이고요.
그렇다보니 이 '리버티6' 초호기 모델을 최대한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두 부부께서 리버티 모델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라며 측면 비가림 공간을 제공해주신거죠.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사례지만, 이런 마음이 있어야지 돋보이는 창작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농막 이용계획에 대해 공유하게 되니 두 가지 어려운 결정사항이 남았습니다.
첫째, 프로젝트 창이냐 슬라이딩 도어냐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농막의 정면 창호를 단열과 보안, 사생활보호, 내구성을 고려하여 프로젝트창으로 하고 부족한 개방감은 오르내리기창에서 변경한 큰 측면 고정창, 천창이 만들어내는 빛우물로 보완하기로 했었는데, 필수 유틸리티 공간을 뺀 나머지 공간을 하나의 썬룸처럼 느끼고 싶었던 제 초심대로라면 날씨가 좋을 때는 활짝 열 수 있고 창이 커서 개방감이 확보되는 슬라이딩 도어가 맞죠.
장단점이 극명한 상황에서 어떤 걸 포기할 수 없는지 고민할 때, 슬라이딩 도어의 개방감이 좋다는 아내의 선호와 보안과 사생활 문제는 암막커튼으로 가려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정실장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창도 없애고, 프로젝트 창을 폭 1.5미터의 3면 폴딩도어로 변경했고, 단열과 비단열 옵션 중에서 정실장님의 실거주 경험에서 나온 조언에 따랐습니다.
둘째, 최초 견적서를 받고, 가격 부담때문에 가성비를 고려해서 바꿨던 최고높이를 3.3 기본모델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3.9미터 모델로 바꿀 것인지였습니다. 다락공간을 만들지 않기로 한 입장이라 높이 변경에 따른 가격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제작 가격 차이 외에도 저상 트레일러로 운송함에 따라 추가되는 운송비용과 트레일러에서 하차할 때도 지게차가 아닌 25톤 크레인을 사용해야 해서 발생하는 비용도 추가로 부담해야 하니까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고가 2.3m인 것은 답답하지만 대략 3m가량 되는 사무실의 높이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아무리 건축교양서에서 좁은 면적일수록 층고를 확보해야지 답답하지 않다는 조언을 반복하고 있다지만 들이는 비용이 과하고 냉난방 비용에서 추가 부담이 생긴다고 생각하면서도 포기하기는 아쉬운 옵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예쁜 가구와 물건들 정보를 주고받는 심미안을 인정하는 친구가 제 고민을 듣더니 차라리 화장실 변기같은 크게 품질 차이가 나지 않는 다른 자재나 설비에서 비용을 낮추더라도 층고를 꼭 높이라고 권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최고 3.3m 높이에 높이 50cm에 지름이 45cm나 되는 octo4241 조명을 짜리몽땅하게 매달아두면 예쁠 것 같냐는 말에 동공지진이 ㅠ.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냥 괜찮은 잘 꾸민 공간 정도가 아니라 내 마음에 딱 맞는 6평 공간을 꾸미려면 필요한 지출이라고 자기 합리화가 되었습니다. 마룸에서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비가림공간을 무료로 시공해주시기로 했는데 저도 상응하는 답례를 해야할 것 같다는 부담감도 한 몫 거들었고요. 그래서 층고를 3.9m로 올렸지요. 처음의 요청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필요 없었을 정실장님의 수고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한창 바쁜 성수기에 계속 이렇게 까다로운 주문자때문에 고생하신 마룸 정실장님께 심심한 위로를. 저도 소심한지라, 중간에 제 요구를 쳐내시거나 귀찮아하셨으면 계속 메일드리지 못했을텐데, 더 아름답고 편리한 공간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휴일과 늦은 밤에도 회신을 주셨죠.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전문 디자인교육기관 SADI 출신 디자이너의 위엄을 느꼈습니다.
첨부한 렌더링 이미지들은 층고를 3.9미터로 높이기 전이라는 걸 참고해주셔요. 지난 연휴 전부터 이런 고민을 상수도 연결방식과 같이 했었습니다. 작은 농막을 하나 가지는 것도 이렇게 결정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매립된 우수 홈통의 깔끔한 디자인도 정말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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