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재경, 김태경 외 3인] 대한민국 돼지산업사(2019)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21. 3. 16. 09:53

본문

5명 이상이 공저한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은 올해의 책 후보다. 김재민, 김태경 박사가 정리한 대한민국 양돈산업사를 바탕으로 나머지 세 분의 공저자가 식육마케터, 육가공 전문가, 축산전문기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멋진 책이 되었다. 황교익씨같은 사람이 방송에서 썰처럼 떠들었던 잘못된 지식을 시원스럽게 세척해준다.

 

농림수산업 분야 산업들 중에 양돈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돈육 생산과 소비가 전세계 각국의 GDP 순위와 같은 9위의 양돈대국에서 널리 읽힐만한 책이다.

 

정부가 식육공급 부족으로 축산진흥정책을 수립하던 1970년대 중반에 삼성은 고기값이 높던 비육우에 투자하던 다른 재벌들과 달리 1년에 30여 마리까지 새끼를 출산하는 양돈업에 투자해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양돈장을 용인에 건설한다.

 

잔반이 아닌 배합사료 급여, 웅돈의 거세를 통한 지방 내 웅취 제거, 100kg의 규격돈 출하에 원종돈-종돈-모돈-비육돈으로 이어지고 전방의 배합사료와 후방의 육가공사업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CJ제일제당이 괜히 지금도 잘나가는 게 아니었구나.

 

덕분에 일본으로의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를 할 정도로 양돈업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소비자들도 고약한 냄새가 나서 생강이나 청주를 잔뜩 넣고 푹 삶거나, 김치나 고추장처럼 강한 양념으로 볶아야 먹을만 했던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금만 찍어서 바로 로스구이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어서 국민 삼겹살의 시대가 열렸단다.

 

이렇게 대기업이 산업을 키워놓은 1980년대말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한 영세농가 보호를 외치는 분위기에서 1990년에 농림수산부가 대기업집단은 축산업을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양돈농가가 키울 수 있는 모돈의 숫자를 1천 두로 했다는 것도 30년이 지난 요즘과 규제방식이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덕분에 삼성이 보다 고도화된 분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긴 했다지만, 조선시대 좋아하는 그 분들이 구한말 외국인들이 어지간한 개보다 작다고 비웃었던 체중 22.5~23.5kg의 재래돼지만 드신다면 인정한다.)

 

축산 인프라와 물류 측면에서 육지에 비해 훨씬 불리한 제주가 어떻게 프리미엄 양돈의 근거지가 되었는지도 궁금했는데, 임실치즈 사례처럼 축산강국 출신의 신부님이 제주에서 육지보다 10년 전에 삼원교잡종 종돈 도입, 양돈전문 배합사료 공장 준공, 거세 등의 선진양돈기술을 전수했었다니. 아시아나항공에 다니던 시절 캐나다 캘거리에서 매년 B747 화물기에 어린 종돈을 가득 실어서 제주로 직항하는 부정기편을 보고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나네.

 

반도체의 수율처럼 양돈산업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MSY지표(출하두수*모돈회전율/모돈수)가 국내 양돈장의 경우 2018년 기준으로 평균 17.8인데, 최정상급인 덴마크는 같은 해 30.3로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나서 의외였다. 같은 LYD 삼원교잡종을 비슷한 재료들을 배합해서 만든 사료를 먹여 키우는 데도 이렇게 생산성 차이가 많이 나다니.

 

또 하나, 1세대 돈육브랜드인 '도드람포크'가 경기도 이천지역 양돈 농가들이 종돈과 사료를 통일해 만든 브랜드였고, '크린포크'는 선진사료를 중심으로 사료부터 돼지 생산까지 수직계열화한 브랜드, 미원그룹의 '하이포크'는 국내 최초로 자체 도축장과 가공장까지 보유해서 도축-가공-유통의 수직계열화를 이룩한 브랜드였다고 한다. '선진포크'와 '하이포크'는 기계화율이 가장 높은 양계업의 공룡 하림에게 인수되었다고.

 

2014년경부터 시작된 이베리코 돼지고기 열풍의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고수익을 자랑했던 한돈 양돈농가들도 절치부심 중인 것 같은데, 양돈농가 차원에서의 대응은 정부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축산 스마트팜을 구축 중인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를 쓰신 이도헌 대표님의 홍성군 성우농장, 재래돼지의 가능성을 실험 중인 이한보름 대표님의 포항시 송학농장의 양 갈래의 대표사례인 것 같아 관심있게 보고 있다.

 

이런 양돈농장의 노력 외에도 육가공업체, 셰프와 HMR 제품을 만드는 식품회사들, 색다른 방식으로 조리한 맛있는 돼지고기에 돈을 쓰는 소비자들의 노력이 합쳐져야지 삼겹살로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양돈업의 활로가 뚫릴텐데 양고기 다음으로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육식 애호가로서 건투를 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