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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렛 한 니먼/이재경 역] 소고기를 위한 변론(2021)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23. 6. 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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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저는 20대 때 좋아했었던 제러미 리프킨이 대중교양서 분야의 엑스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트렌드를 잘 읽고서 전달력있게 주제를 뽑아내서 책을 쓰긴 했지만,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하고 명료한 잘못된 답으로 인도당한 것 같아서요. 저의 육식에 대한 생각의 틀은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 형성해줬습니다. 물과 목초지를 가장 많이 요구하고 반추과정에서 트림과 방귀로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는 소고기 사육에 대해서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니콜렛 한 니만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환경전문 변호사로 공장식 사육을 반대해왔고, 50살이 되기 직전까지 30년 이상 채식주의자로 살아왔으며, 방목식으로 소를 사육하는 목장 겸 농장주의 배우자라는 독특한 경력이 있길래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자연방목, 혹은 대부분의 기간을 자연방목으로 키우고 1~2개월 정도의 단기간 동안 곡물을 섞은 사료로 비육한 소고기는 건강에도 좋고 방목 축산업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탄소를 적게 배출하며 기계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법과 달리 생태계의 유지에 오히려 기여하는 지극히 권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의 되새김질은 어차피 풀을 생물학적으로 분해하는 과정이니, 소가 아니었어도 부패 과정에서 어차피 생길 메탄의 양은 빼야죠. 지구온난화 중 축산업의 비중이 18%로 전체 수송부문보다 더 크다는 FAO의 연구보고서가 오류로 점철되어 있었고 전문가들이 보는 전망치는 훨씬 낮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밭을 가는 행위가 식물의 뿌리와 토양 사이에서 유기물을 교환하는 균사체의 그물이 물리적으로 찢어내는 것과 달리 무경운 농법처럼 방목축산이 만드는 초지는 토양생태계 활성을 유지하고 탄소를 포집한다는 내용도 인상깊었습니다.
제가 관행농법을 해보니 비닐로 멀칭을 하지 않으면 유기성분이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표면의 흙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지표수도 흙속에 잘 스며들지 못했거든요. 잡초들이 흙을 덮고 있으면 잡초에 치이면서도 작물들이 잘 자라고, 흙이 잘 부서진다는 걸 요즘 체험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자는 공장식 축산을 혐오하고, 풀뿌리까지 먹어치우는 염소를 과다하게 키워 초지를 파괴하는 부적절한 과밀방목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방목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경작한계지 밖의 토지들을 식량생산을 위해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초지는 흙먼지가 날리는 메마른 관목림보다 곤충과 다른 동물들의 종 다양성이 더 풍부하다는 연구자료들을 인용하는데 저는 몽골 유목민들의 세심한 유목문화를 떠올려봤을 때 수긍이 갔습니다.
다만, 저자가 영양학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주로 다른 영양학 서적 중 자신의 관점에 맞는 책들을 여럿 인용하면서 방목으로 얻은 소고기가 최고의 식재료인 것처럼 예찬한 뒷부분은 과한 것 같아 신뢰도를 떨어뜨리네요.
한국의 국토여건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 같은 방목 사육만으로 키우면 지금도 세계 최고로 비싼 국내산 소고기 가격이 몇 배나 더 올라갈테니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대수층 물을 끌어 올리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작한계지에서의 관행농법보다는 반추동물의 방목사육이 생태계의 유지엔 유리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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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쪽
비영리 환경단체 랜드 스튜어드십 프로젝트의 현장조사 결과, 여러해살이 식물이 자라는 방목용 초지는 경작지에 비해 토양침식이 80% 이상 적었다.
153쪽
가축의 풀 뜯기를 푸드시스템의 일부로 유지하는 데 따른 종합적 효과는 물의 양과 질 양방향의 수자원 보호다. 다른 용도의 토지들과 비교했을 때, 특히 경작지와 비교했을 때 초지는 토양을 보유하고, 식물에 필요한 양분을 만들고, 병원균, 침전물, 영양물질이 지하수와 지표수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빗물을 여과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다.
199쪽
"도시화한 사람들에게 식료의 원천과 자연의 실체는 점점 더 추상적으로 변해간다. 또한 도시 사람들은 동물을 과보호하거나 과하게 두려워하는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나는 자연과의 단절이 현대인을 삶의 불가피한 요소들에서 유리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적 노화와 쇠락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질병, 부상, 고통,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겪게 된다. 이런 삶의 요소들을 다른 생물들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 우리 자신을 거대한 생명순환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갖게 된다. 이는 우리를 각자의 삶의 여정에 대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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