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농막>
73화 : 끝낸 자의 우울
지난 주 토요일로 제가 생각했던 농막에 필수적인 공사들은 다 끝났습니다. 순간온수기나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 정도야 소소한 일이니까요. 작년 가을 땅을 사고서 해야할 일들 생각에 머리속이 분주해졌고, 올 2월에 농막 구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제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투입했지요.
이렇게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냈으니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몇 달을 야적했다가 받느냐 마느냐 하던 고난 끝에 농막을 무사히 설치했던 지난 6월처럼 기쁘지 않더군요. 오히려 맥이 탁 풀린 상태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고 가벼운 우울감이 듭니다.
제가 고집해서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최적의 방법이 아니었거나 틀렸던 부분들과 그로 인해 낭비된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자책하게 됩니다. 어차피 해야할 지출이라고 끊임없이 설득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내와 제가 공동운명인 가계의 저축을 없애고, 다짜고짜 주식을 팔거나, 대출을 늘리는 결과로 무던한 아내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여러 번이었고요.
직장에서도 소홀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누가 대체해줄 수 없는 저만의 프로젝트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자리를 비울 때 팀원들에게 부담을 더 가하는 미안함, 연구과제 발주처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진도와 내용들로 화답하지 못하는 부담감이 마음의 벽에 박힌 못자국처럼 하나씩 늘어가더니 점점 복구할 엄두가 안나는 상황으로 치달아갔습니다.
내가 원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구상했던 것대로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하면서 애써 달래왔습니다.
지난 토요일 공사 때 알골재를 배달해주고 후진으로 바로 나가지 않고, 무단으로 이웃 P군네 땅 안쪽으로 들어가서 애써 가꿔둔 바닥을 다 뒤집어놓고 간 초보 15톤 덤프트럭 기사님의 잘못을 파파중기 김대표님께 부탁해서 복구해달라고 요청해서 바닥을 다듬은 일이 있었습니다.
P군에게 이날 공사로 제 차를 잠깐 주차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15톤 덤프트럭이 P군의 땅에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지게차가 흙을 뒤집어놓는 게 싫어서, 미니 굴삭기로 반나절이면 끝날 공사를 1주일 동안 삽으로 고생하며 직접 배수로 작업을 했던 P군의 노고를 아는 입장에서 면목이 없더군요. 그래도 바로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문자와 전화로 경과를 말씀드리고 사과드렸습니다.
오늘 오후 P군 어머님의 속상한 마음을 듣고서 연거푸 사과드리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그간 좋게 지내왔던 P군과 모친께서 오죽 속상하셨으면 이렇게 또 연락하셨을까 생각해서 이해가 되면서도 저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지네요.
지난 반 년동안 법령도 다 지키고, 이웃 분들께 최대한 노력했고, 든든한 내 편인 아내의 충분한 지지를 받고서 성취해낸 결과물이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처뿐인 마무리랄까요.
이제야 제가 원했던 농막 라이프의 출발선에 섰는데,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만사가 귀찮은지.
전원주택 건축 경험담 중에 정말 애정을 갖고 투자도 많이 했던 건축주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공사지연과 인허가 문제, 이웃과의 분쟁등 온갖 장애물들을 해결하느라 고생을 겪더니 정작 집을 완성하고 나서는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그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기력이 없어져서 사용승인이 난 집에서 하룻밤도 안자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후기를 봤었는데 그 건축주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작은 농막이지만 기반시설 하나 없는 곳에서 쾌적한 아파트 생활자들도 이물감없이 이용할 정도로 갖추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한 일이 많네요.
일종의 번아웃 상태인 것 같은데, 굳이 저 같은 경험을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을 벌이다보면 부하가 걸리고, 그러다보면 지쳐서 만사가 귀찮아지고 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돈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그만큼 구상을 실현하는 속도를 늦췄어도 되었는데, 누구도 성과물 진도를 채근하지 않은 개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조바심을 내며 무리를 했는지...제가 자초한 일이지만 후회가 되고, 다른 분들은 저처럼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7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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