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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셸렌버거/노정태 역]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2020)

독서일기/기후변화

by 태즈매니언 2021. 12. 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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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분야에서 셀럽 대우를 받으며 좋은 시절을 보냈던 앨 고어 같은 외국의 윤미향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람들이 못보고 숨기고 싶은 책이 여기 있습니다. 유력한 제 올해의 책 후보에요.
과학적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위선자들의 상징자본 획득 다툼으로 전락한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던지는 팩폭들이 속시원하면서도, 반세계화와 환경운동 열풍의 세례를 받았던 90년대말 20대 초반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부끄러움이 밀려오네요.
이언 모리스가 <가치관의 탄생>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사회 발전의 본질적인 요인은 '에너지 획득/사용 능력'이고 각국의 1인당 GDP와 1인당 에너지사용량이 거의 비례한다는 연구결과를 볼 때 '환경 문제를 가장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 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열렬히 반대하면서 비료나 홍수 통제,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소 등을 공격'하는 사례들을 보니 답답해집니다.
미중 갈등에서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약세를 보이는 중국이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2035년까지 150기 이상의 원전을 신규 건설하기로 한데 반해서, 미국은 94기의 기존 원전 외에 신규 건설이 거의 불가능하고,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스마트그리드로 엮겠다는 전략이라는 부분이겠다 싶네요. 과연 미국이 엘리트와 도시 중산층들의 종말론적 환경주의 여론을 설득하고 에너지 획득 효율을 중심으로 한 사회기반 시설 확충에 나설 수 있을지. 이 책이 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데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도시 중산층 베이비부머와 한국의 586세대, 그리고 그들의 정당이 에너지 정책에서 내로남불이 어쩜 이리도 판박이인지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원자력의 유용성에 대한 항변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도 비슷한 논지라고 하는데 같이 읽어보고 싶네요. 미뤄뒀던 대니얼 예긴의 <뉴맵>도 봐야할 것 같고요.
일단 이 책덕분에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처럼 아직 읽지 않았던 종말론적 환경주의 성향의 책 몇 권을 책장에서 방출했습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매료되어서 세상을 걱정하기보다는 계속 에너지 효율적으로 집적된 도시문명이 주는 인프라를 누리면서 가끔 관리된 자연을 통해서 포유류의 본능과 정신건강을 챙기는 '가드닝' 취미를 갖는 게 개인에게 유익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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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쪽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전기와 LPG를 공급하기 위해, 또 유럽연합과 미국 자선 사업가의 원조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콩고는 치안과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나라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20쪽
그린피스나 멸종저항의 주장은 틀렸다. 가난한 나라에 에너지 밀도 높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숲을 위협하지 않는다. 공장이 떠나 버릴 때 숲은 진짜 위기에 빠진다.
226쪽
인류가 인구 정점을 찍고 인구 감소로 돌아서게 될 시점은 언제일까. 많은 인구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에 따르면 그 시점은 콩고 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산업화를 언제 이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520쪽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일종의 세속 종교다. 기성 종교색이 옅은 고학력층을 위한 신흥 종교인 셈이다. 신도들은 주로 선진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상위 중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경주의는 신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제공한다. 환경주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영웅과 악당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준다. 또한 환경주의는 과학으로 이름으로 설파되는데, 따라서 지적인 권위까지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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