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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민]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2021)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22. 1. 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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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하는 163명의 환자가 모두 범죄자(이 중 살인범이 33.2%...)이자 정신질환자인데, 급여는 다른 동료들보다 절반 밖에 못받는 일을 4년 넘게 하고 계신 의사 차승민님의 직업 에세이입니다.

법을 배우면서 정신질환자인 기결수를 교도소가 아닌 특수한 병원으로 보내는 행형제도인 '치료감호' 를 알게 되었을 때 흥미로웠습니다.

2018년부터 심신미약이 임의감경 사유로 바뀌긴 했지만 조두순같은 정신질환자가 저지는 범죄 뉴스를 볼 때면, 잔악한 범죄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선고형을 감경해줘야 하는지, 재범 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도소가 아닌 격리병원으로 입원을 시키는 걸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셨을 겁니다.


치료감호제도에 관심이 많으셨던 로스쿨 교수님 덕분에 전문의 1인과 가족의 신청으로 사실상 '구속'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하는 강제입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귀동냥을 했던 터라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소인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과의사로 근무한 분의 직업에세이에 관심이 갔죠. 게다가 국립법무병원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20km 거리에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일부 정신병원들의 예전 강제입원 이나 환자사냥 사례를 듣고 가졌던 치료감호제도에 대한 제 선입견을 없애줬습니다. 저는 2016. 9. 29. 당사자의 동의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부당한 인신구금이라고 본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찬사를 보냈거든요. 게다가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려줬습니다. 많지 않은 분량인데도 말이죠.

강제입원의 판단을 의사나 보호자에게 지우지 말고, 전문적인 상설 행정위원회나 사법부에 맡기자는 저자 차승민님의 제안이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의 2022년 첫 번째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려봅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길 권하고요.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보고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가 일산에 위치한 출판사 '아몬드'의 첫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신출내기 출판사가 가뜩이나 정신감정 의뢰에 치료로 바쁜 저자를 설득해서 출판권 설정 계약을 하고 이렇게 책으로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을까요?

 

요즘 출판시장이 셀럽들의 광고나 SNS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면 많이 팔기 쉽지 않다고 하지만 제가 산 이 책은 2021년 7월 15일에 1쇄를 펴냈고, 두 달 후인 9월 17일에 3쇄를 찍었더군요. 저와 다른 독자들 덕분에 4쇄, 5쇄를 찍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책은 찾아서 봐주는 독자들이 그래도 몇 천 명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운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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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국립법무병원은 정신질환 범법자의 전문 치료, 재활을 위해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원으로, 치료감호법에 따라 치료감호형을 받은 사람을 수용 감호하며 동시에 치료하는 기관이다. 또 법원이나 검찰, 경찰 등에서 의뢰한 정신감정(국내 형사정신감정의 약 90%인 450건 가량을 수행)도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치료감호형을 수행하는 기관은 이곳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질환 증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인정되어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교도소 대신 이곳에 온다.

45쪽
병동을 폐쇄하는 이유는 뭘까? 폐쇄병동의 가장 큰 목적은 환자의 안정이다. 증상이 심한 정신질환자는 자극을 최소화하려면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서도, 너무 많은 일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곳은 당신이 아는 의사와 간호사, 보호사들만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어야만 외부로부터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는 취약한 환자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다.

114쪽
보호관찰소 통계에 따르면 2011년 7월 24일 성충동 약물치료 시행 이후 전국 보호관찰 대상자 중에서 현재까지 43명이 치료를 받았고 재범자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두 명은 치료 명령 기간 종료 후에도 여전히 자발적으로 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288쪽
국립법무병원에서 퇴원하면 10년 동안 무상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약값도 무료고 면담료도 무료다. 우리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서 오기 힘든 사람을 배려해 전국 5개의 국립정신병원에서도 무상 외래 진료가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는 하나다. 재발을 막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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