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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던컨/김범 역] 조선왕조의 기원(2000)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22. 6. 2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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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 동안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주로 컵받침으로 쓰였을만큼 꾸역꾸역 읽은 책. 1945년생으로 서양의 1세대 한국사 연구자의 박사논문을 풀어 쓴 내용을 이해하기엔 제 한국사 지식이 너무 모자라다보니 계통없는 독서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관료적 귀족층으로서 양반의 기원은 조선왕조의 건국이 아니라 고려시대인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에 시작되었고, 1392년의 왕조 교체는 혁명이라기보다는 지역적 신분제에서 탈피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수립하려는 10세기의 노력이 4세기 이상 흐른 뒤에 달성된 것이라는 핵심 주장이 제가 배웠던 국내 한국사학계의 통념을 논파하는데 주장의 당부는 제가 판단할 능력이 없고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네요.

 

다만, 국내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쓴 책이나 강의를 들었던 경험과 달리 동시대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사상이나, 사회경제사 지식과 연구자들의 연구방법론들이 다양하게 인용되고 활용되는 책을 읽다보니 '박대정심'이 뭔지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조선조 첫 200년 동안 대과 급제자의 가문을 모아서 정리한 성실한 광부와 같은 원전연구자가 에드워드 와그너라는 외국인 학자라니 씁쓸했고요.

 

학부시절 국사학과에서 개설한 한국사회경제사 수업을 들었을 때 국사학계 주류의 내재적 발전론 입장을 충실하게 주입받았을 뿐, 동시대 세계각국과의 비교나, 같은 민족이면서도 근대 직전까지 전국민의 30%를 노예로 부렸던 사회를 과연 소농사회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못했던 걸 보면 역시 전 학자가 될 재목은 아니었네요.

 

중등교육과정의 한국사과목을 최소한 한국 및 동아시아사로 개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네요. 일국사 중심의 서술로 민족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대가로 입체적인 역사인식을 희생하는 거래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

 

그래도 미국 워싱턴주립대 출판부에서 2000년에 발간한 이 책을 2013년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 번역자 분이 제가 싫어하는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공무원인 연구자이신 걸 보면 조직은 이상해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는 분은 계시다는 걸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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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가 자원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중요한 근본적 원인은 향리에게 집중된 전통적 지방질서가 붕괴한 것이었다. 향리의 지방 지배는 국왕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분량을 제한했지만, 향리는 조세를 걷고 귀족의 통제를 받지 않는 토지와 백성에게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지속적인 존재는 국가의 재정을 풍족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외침과 중앙 양반 가문의 전국적인 경제적 침탈은 지방의 사회질서와 향리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중앙에서 지방을 강력하게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는 자원을 다시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제도적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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