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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메리먼, 김희균 역] 대륙법 전통(2018)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22. 7. 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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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후보를 만났습니다.
학부 전공이 법학이 아니었고, 수험법학으로만 배우다보니 비어있는 부분이 많았던 저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서요. 대륙법과 영미법을 비교한 책들을 몇 권 읽긴 했지만 이 책처럼 많지 않은 분량으로 잘 비교해준 책은 없었습니다. 세종도서 픽에 대한 신뢰가 낮았는데 간만에 고맙네요. 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분이 보시는게 좋아 보입니다.
어차피 이미 대륙법과 영미법이 서로 장점을 닮고 있고, 우리나라 법도 미국의 영향으로 영미법제의 요소를 많이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원래의 모습이 왜 달랐고, 어떻게 섞인 것인지 알 필요가 있죠.
다 읽고 느낀 바로는 무협세계로 비유하면 대륙법은 내공심법(개념법학 ex민법총칙)에 기반한 정파무림(로마법이 소림, 독일민법이 무당)이고, 영미법은 개인의 특성과 실전경험을 강조하는 사파(사파무공비급은 Restatement of the Law) 같은데, 현대는 스포츠과학을 장착한 이종격투기가 제패했으니 기본적으로 영미법 기반에 일부 대륙법의 요소들을 보완하는게 현대사회에 필요한 법체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1~2개월 기다려서 5분 재판해서 한 심급에 2년 넘게 걸리기도 하는 국내 민사재판의 현실을 보면 영미법과 국민참여재판처럼 집중심리(+직접주의+구두주의)로 단기간에 재판과 판결을 내려서 분쟁을 종결시키는 게 소송당사자들에게 절실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미법계의 재판이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 경기라면, 대륙법을 계수한 우리나라의 재판은 각자 판사 앞에서 차례로 무공을 3초식씩 나눠서 펼쳐보이고, 그렇게 조각조각난 무공들을 다 시연하고 나면 판사가 그 비무의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해주는 태권도의 품세 시험 느낌이라 변호사들이 고생하고 품이 많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우수한 변호사인지, 왜 변호사들이 고액의 수임료를 요구하는지 의뢰인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그 책의 번역자분이 제게 형사법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이시네요. 자기 자랑을 안하셔서 미국 로스쿨에서 SJD 취득 후 뉴욕주 바시험까지 패스하신 분인지 몰랐습니다.
책 말미의 역자 보론 <돈 유스티아누스 키호테>는 로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던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로마법 소개서도 좀 찾아봐야겠어요.
김희균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종종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주셨는데 변호사시험을 목표로 한 직업학교 분위기인 수학 환경상 본인께서 원하는 강의를 못하는 것때문에 의욕이 안나셨던 인상이 기억나네요.
다수의 책들을 번역하셨고 커리어로는 의외인게 로마사와 로마법에도 정통하신 분이기에 형사법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영미법학자의 시각에서 대륙법 전통을 자신들과 비교해보는 이 책을 번역하실 수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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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는 '실제 법원이 어떤 식으로 행위하는가'에 있지 않다. 법원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05쪽
이처럼 판사를 보는 시각 차이에서 법적 안정성의 문제, 법관의 재량권 문제, 징벌권의 문제 등의 차이가 생긴다. 확실히 대륙법계 판사들은 프랑스 혁명이 남긴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여러모로 불편한 자세로 일하고 있다.
124쪽
영미법 진영에서도 개념법학과 궤를 같이하는 생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세력을 확보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개념법학이 교수들의 작품인데 반해서 영미법은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주도하는 법이고, 판사들이 이론보다는 문제 해결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념법학이 주장하는 과학주의, 체계화, 형식주의는 문제 해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 개념법학은 태생적으로 사법제도 내에서 판사가 아니라 학자와 입법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중략)
미국에서도 한때 독일법학의 영향을 받은 일련의 교수들이 소위 사례교육방법론을 도입했던 적이 있다. 법의 일부를 이루는 판례를 재료로 삼아서 그 안에서 공통 이론을 추출해내고 이를 체계화하는 일에 몰두한 것이다. 지금도 로스쿨 도서관에 가면 찾을 수 있는 <리스테이트먼트(Restatement of Law)>시리즈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202쪽
보통법에서는 배심재판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상소심에서 사실관계를 또 다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1심에서조차 배심원은 어떤 사실을 발견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게 아니고, 당사자들의 태도나 여러 가지 정황을 보고 평결을 내릴 뿐이다. 평결 내용을 설명할 의무도 없으며, 재판절차가 기록으로 남지도 않는다. 1심 평결문에 어떤 사실이 있다고 적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심재판에 대해서 상소심이 다시 보겠다는 이야기는 배심의 결정을 전부 무시하고 새로 판단하겠다는 것과 다른 바 없다. 영미에서 사실에 대한 상소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221쪽
(오랫동안 비교법을 공부해온 어떤 이의 지적에 따르면) 죄가 없는 사람에게는 대륙법이 낫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영미법이 낫다. 대륙법의 형사절차가 그만큼 유죄인 사람과 무죄인 사람을 구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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