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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외/안은미 역] 작가의 마감(2021)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3. 2. 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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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없는 글빚 계약은 처음이라 생소했습니다. 더구나 제 글은 항상 후불이었는데, 선금으로 먼저 받은 것도 없었던 일이었죠.
계약 당시에는 연구보고서나 자문의견서를 쓰는 게 제 밥벌이니 안해봤지만 요청에 따라 글을 써내는 걸 설마 못하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명확한 수요처와 발주의도가 없는 글을 쓰는 게 어렵더군요.
원고 수정 과정에서 2교 요청을 받고서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제 글을 어떻게 손봐야 할지 엄두가 안나더군요. 한 달 가까이 편집자분께 회신을 못하고 있을 때 선배 작가님의 응원이 담긴 선물꾸러미에 이 책이 딸려 왔습니다.
전혀 몰랐던 책인데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더군요. 원고납품은 직업으로 삼은 글쟁이들도 이리 괴로워하는데 처음하는 사람 입장에서 당연하다는 걸요.
지난 주까지 제가 해야할 모든 납품을 끝내고, 불쌍한 중생들을 내려다보는 마음으로 편하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일본의 훌륭하신 작가님들이라지만 저는 마감을 끝낸 사람이니까요. ㅋ
이제 느긋한 책소비자로 돌아오게 되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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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문제는 (도스토옙스키의)<작가의 일기>같은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뭔가 쓰기보다 남의 글을 읽는 편이 훨씬 기분 좋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더는 펜을 들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 호조 다미오
39쪽
부탁받으면 상대방의 성의를 봐서라도 어떻게든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맡았다고 해서 반드시 써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왜냐하면 쓸 수 없을 때 쓰라고 하는 것은 집필자를 죽이는 일이라서다. 집필자를 죽이면서까지 원고를 받으려는 행위는 최초의 성의를 사욕으로 바꿔버린다. - 요코미쓰 리이치
88쪽
글 쓸 때의 마음을 말하면, 만든다기보다 키운다는 심정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본디 작동 방식은 하나밖에 없다. 단 하나뿐인 그 방식을 차례차례 찾아내며 써 내려간다. 찾아내지 못하면 이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냥 밀고 나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바싹 긴장하며 조심해야 한다. 바싹 긴장해도 나 같은 사람은 미처 못 보고 놓쳐버린다. 그것이 괴롭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35쪽
얼핏 작가가 윗사람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편집자다. 가장 먼저 원고를 읽고 잘 썼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라서다. 작가라는 마술사가 자신의 마술을 맨 처음으로 평가하는 편집자에게 엉터리 마술을 들이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편집자는 원고의 글자 배열을 언뜻 본 것만으로도 내용이나 작품의 깊이 등을 금세 파악하는 직감력이 뛰어나기에 방심할 수 없는 무서운 사람이다. - 무로 사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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