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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정지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0)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23. 6. 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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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내내 책을 좋아하시는 저의 많은 페친님들께서 입을 모아 극찬을 하시며 추천하신 책을 이제야 읽었네요. 어제 이승우씨의 소설 <캉당>을 읽은 덕분에 뇌가 이런 책을 읽기에 좋은 상태여서 좋았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는 어린 딸의 질문에 대한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과학자인 아빠의 솔직한 대답이 이 책을 이끌어 냈습니다. 저명한 과학전문기자가 된 딸이 아빠의 답변을 인정하면서도 진화론적으로 이해한 인생의 의미를 제시하네요.
자전적인 에세이와 우생학에 빠진 저명한 과학자의 전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론과 무신론자의 세계관까지. 제 올해의 책으로 꼽아 봅니다.
저자 룰루 밀러는 의미나 이야기를 추구하는 존재로 진화된 인간은 살아가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가게 되는데 '혼돈의 해독제라는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킨 대가를 1851년에 태어난 미국의 분류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의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통해 보여주면서도, 관찰자로만 머무르지 않고 자전적인 회고담을 통해 독자들이 조던을 기괴한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19세기 이후 현대까지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함의를 사람들에게 오롯하게 전해야 하니까요. 과학이 꽤나 극복해왔지만 여전히 진화론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종교인이나 우생학을 신봉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그런 분들이 이런 책을 읽을 가능성은 높지 않겠죠.
번역하기 어려웠을 이 책을 유려한 한국어 문장으로 옮겨주신 번역자 정지인님, 그리고 이런 좋은 책을 발견해서 한국에 곧바로 번역해주신 곰출판 모두 고맙습니다. 곰출판에서 낸<인류세의 모험>도 읽으려고 쌓아둔 책인데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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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57쪽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중략)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141쪽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227쪽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쎴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름을, 자연의, "생명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50쪽
그것은 정확히 그가 자기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268쪽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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