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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신] 전지적 건설 엔지니어 시점(2023)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3. 2. 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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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원고가 인쇄소에서 책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걸 확인하고나서, 처음으로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니 느낌이 좀 다르네요.
유튜버라는 직업을 남의 저작물을 공짜로 도둑질해가서 돈버는 직업으로 전락시킨 양심없는 사람들 소식을 들은 직후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전지적 건설엔지니어 시점>을 쓴 양동신 작가님은 토목공학을 전공해서 인프라시설 건설 경험을 다수 쌓은 엔지니어로 <아파트가 어때서>를 썼던 분입니다.
저는 양작가님을 2007년 여름 1개월 동안 진행된 금호아시아나그룹 공채 신입사원 교육 때 같은 반 동기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은 보는 사이입니다.
읽어보니 제가 그간 양작가님을 만나오며 매력을 느끼고, 닮고 싶었던 지점들이 이 책에 담뿍 담겨있네요.
평소 사생활 노출을 꺼리시는 양작가님께서 사적인 내용이 꽤 담긴 이 책을 쓴 이유는 대학 입시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로 원했던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지 못했고, 주변에 건설업을 이해하는 어른이 한 분도 안계셔서 자신이 선택한 전공으로 회사에 취직하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기 어려웠던 20대 초반의 자신과 같은 도시/토목공학 전공자들에게 중견의 현직자로서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서 였다고 짐작됩니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고요.
(요즘 공대에서 입학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학부가 토목공학이라던데 ㅠ.ㅠ)
기본적으로 실용학문인 ’토목/건축‘공학을 전공하고자하는 학생이나 그 부모님, 이들 학부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에게 딱 맞는 책입니다. 겨우 13,500원에 이런 업계 현직자의 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제가 직업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확인했죠. 자기계발서는 책을 쓰는 사람이 돈 벌려고 파는 종이쓰레기 혹은 독극물이지만, 이런 겸손한 직업에세이는 실제로 독자들의 자기계발을 돕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일부만 발췌하면 흔한 조언들 같지만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인 건설엔지니어들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저도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건설 및 운영되고 총사업비가 수조 원이나 되는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문과생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흥미있게 읽었네요.
(20제곱미터 면적의 기초콘크리트도 쳐보고, 벽돌을 쌓아봤으며, 닭장 구조물도 만들어봤으니 저도 취미 토건인은 될 듯요. 여러분도 주말 취미로 농막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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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쪽
쾰른성당은 수백 년에 걸쳐 일반 시민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비슷한 148m높이에 연면적은 쾰른성당의 21배에 달하는) 미래에셋 센터원과 같은 빌딩은 고작 4년의 공사기간 안에 사회적 효용이 높은 구조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냈다. 게다가 미래에셋 센터원은 완공 후 기부채납을 통해 빌딩 앞 광장과 건물 1층을 개방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현대건축물의 사회적 효용은 과거의 그것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건설 엔지니어로서 역사적인 건축물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는 데 동의하기 어려운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36쪽
우리가 다니는 보도나 도로 밑에는 대부분 공동구라 하는 콘크리트 박스가 존재하며, 그 공동구 안에는 전력, 통신, 수도, 가스, 난방 등의 시설이 존재한다. 심지어 각 지자체 시설관리공단은 24시간 순찰 및 점검을 하며 매일같이 해당 구조물의 안전을 점검한다. 이렇듯 당연히 안전하게 존재해야 하는 시설물은 매일같이 누군가의 유지관리를 받고 수십 년간 잘 가동되는데, 어느 한순간 홍수나 한파로 인해 고장나면 엄청난 죄를 지은 것 같이 비난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학교에서 우리 주변에 있고, 있어야 하는 사회 인프라 시설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171쪽
미국에서 한국의 기술사에 해당하는 PE의 2015년 평균합격률은 56%라 한다. 이게 영국으로 가면 65%, 호주 70%, 네덜란드는 심지어 90%까지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술사가 된다고 해서 해당 선진국의 구조물이 한국의 구조물보다 부실하다고 볼 수 있을까? 되려 전국 700만 개가 넘는 건축물의 안전이 고작 연간 50명 내외로 선발되는 건축구조기술사에 의해 관리되는 현실을 걱정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을까. 실상 건설회사에 가보면 기술가 자격증이 없는 직원들이 오히려 더 높은 업무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으며, 머리가 희끗한 기술사는 책임지고 도장 찍는 일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와 같이 자격증의 수를 제한하면 할수록 기득권의 지대는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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