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높은 글항아리 출판사의 이은혜 편집장님의 전작 <읽는 직업>을 읽고 감동을 받았었죠.
그래서 이번 책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어떤 책인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주민했고요.
아쉽게도 좋은 글들이긴 했지만 챕터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그런가 했더니 우선 독후감과 에세이가 혼합된 이 책에서 소개한 책 중에 제가 읽어본 책이 겨우 한 권이었다는 점, 둘째로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하는 잡지에 <책의 밀도>라는 코너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냈다는 점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맺음말의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인상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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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11쪽
자기 비하를 일삼는 사람 옆에는 누구든 있기를 꺼린다. 자기 비하는 자기애의 순환 고리 속에 있는 것인 데다, 비하라는 것이 딱히 윤리적 반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직시가 내포할 만한 발전즉 측면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197쪽
독자는 작가만큼 어둡게 살지 않아도 된다. 작가가 꼼꼼하게 자신의 기억 흔적으로 작품을 창조하면 그걸 자기 기억과 맞물어 읽으면 된다. 독자는 창조의 고통보다 해독하는 수고로움 정도만 감당하면 그만이다.
198쪽
글 쓰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고 우회하는 행위다. 할 일 속으로 곧장 뛰어들지 못하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기웃거리다가 이런저런 순간과 기억을 지연시키며 며칠씩 흘려보낸다. 쓰는 이들은 점점 더 비효율적이 되어가고, 바로 여기에 글쓰기의 구원이 있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며, 소진되고 꺼져가는 가운데 글쓰기 행위 자체에서 가치를 얻는다. 구원받은 작가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포착해 노래로 들려주면 우리는 그 예술을 감상한 뒤 거기서 주워 보은 단어들을 제 삶으로 끌어들이면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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