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시간의 80% 이상을 편리한 현대 도시에서 보내되 일주일에 하루쯤을 자연 속 나만의 공간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농촌마을 언저리에 살짝 발을 담가본 정도기에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의 시골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에서 살면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각각 다섯 시간 동안만 집에서 직접 만든 두 가지 빵을 팔아 돈을 버는 사업가이자, 한 달에 100만 원 남짓으로 사는 네 식구로 구성된 가정을 경영하는 한국인 주부께서 쓰신 책인데 저만 훅 와닿는 책은 아니었는지 2021년에 나와서 9쇄나 찍었더군요.
저는 아직 은행대출이 많은 잠재적 채무노예라 이런 해방된 삶을 선택할 엄두도 낼 수 없고, 집에 커피, 인터넷, 술도 없는 삶을 제가 원하게 될 가능성은 낮겠지만 매혹적인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는 산업기술문명 속에서 '권력 과정'의 경험을 빼앗긴 인류는 한꺼번에 전방위적으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호소를 했죠.
하지만 저는 박혜윤님처럼 자본주의를 긍정하되 진정으로 자신이 '권력 과정'을 통제하며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정도로만 소비하고 향유하는 단순검박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인류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 같습니다.
그런데 1인당 GDP가 1~2천 달러밖에 안되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까지 저자처럼 살아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더 조밀하게 세계화되고 산업화된 세상이 온 다음에나 이런 대안이 범지구적인 호소력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이 비슷한 마음으로 시작해도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는데, 드넓은 대륙에서는 <월든>이 되는, 넓은 자연 공간을 언제고 저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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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돈을 많이 벌 필요가 없기에 돈과 즐거움이 하나된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즐거울 만한 일을 통해서만 돈을 버는 것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닐 때 돈은 우리의 내밀한 욕망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수단이 된다.
내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 시설이.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 비료를 쓰지 않는 농사를 짓고 야생먹거리를 따 먹는 게 가장 좋겠지만 뙤약볕에서 노동에 시달리며 손이 비틀어지고 등이 굽고, 각종 부상을 달고 사는 삶을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가난에서도 참을 수 있는 가난이 있고 참을 수 없는 가난이 있다. 이 시대가 겪고 있는 가난이 바로 참을 수 '없는' 가난이 아닐까 싶다. 가난이 한 인간의 자격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인격적 모욕이 되어버렸다. 모든 경험과 물건에 돈의 가치가 매겨지는 순간 그 돈의 숫자는 냉혹한 평가의 기준이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식이나 책, 혹은 도덕은 없다. 오히려 선별하고 선택해야 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 선택은 나만의 고유함에서 나오고, 따라서 거기에 정직하고 당당해야 하지만, 그 자유는 온전히 내 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 다음 세대와도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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