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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설]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2023)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23. 10. 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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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한 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가 10년 동안 경향신문에서 기사를 써온 1985년생 허남설 기자의 서울시내 도시재개발 사업과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인상비평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책표지 사진인 건물 위에서 내려다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조잡하고 촌스러운 지붕 풍경을 조감도처럼 멀리서 내려다보니 말고, 불만족스러운 못생긴 풍경 속이 2만 여명이 어우러져 일하는 도심 제조업 현장이라는 투시도의 관점을 갖자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양동신님의 <아파트가 어때서>처럼 70~80년대의 낙후된 기준으로 지은 불량주택들을 굳이 설계수명까지 유지하지 말고 재건축을 하자는 입장입니다. 천편일률적인 35층 규제가 오히려 도시경관을 망치고, 재개발을 하면서 용적률을 높여주더라도 건폐율을 높지 않게만 관리하면 도시의 지상부가 더 쾌적해진다는 양작가님의 주장에 동의하고요.
제가 저자 허남설님처럼 30대 중반이고 서울 도심에 있는 직장인이라면 똑같은 거리와 시간, 교통수단이라고 가정했을 때, 창신동 백사마을에서 이웃 주민들과 교류하며 살면서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량을 피해서 뒤뚱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동네보다는 최소한 소방도로는 확보가 되고 비가 와도 정화조가 역류하지 않는 동네의 다세대주택에서 살고 싶으니까요.
도시공간의 구조에는 권력관계와 자본투자수익률의 자력장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월세가 저렴한 곳에는 소상공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테니, 지자체는 노후수준을 지나 불량 수준이 되어가는 주거지를 인위적으로 바꾸려하지 말고 아예 손을 떼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의 차이로 소모적으로 계속 다투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올해 8월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운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일대 백사마을 재개발 구역의 관리처분계획안이 의결되었습니다. 재개발 구역의 70%는 기존의 재개발 방식대로 20층 높이의 아파트단지로 만들고, 나머지 30%는 기존 백사마을의 동선과 특징을 남기는 주거지보존사업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피드백을 후속 사업에 반영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되네요.
10명의 건축가들이 다른 일도 많을텐데도 10여년 가량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에 꾸준히 참여하며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백사마을 디자인가이드라인>의 "마을 전체가 지향하는 자원의 공유, 공간의 공유, 기회의 공유를 구현하는 계획을 한다."는 비전을 구현한 결과물을 보고나서 판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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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쪽
그제야 저는 지난 겨울 그 노인을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행당동 노인은 살던 동네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반지하에서 버티고서도 겨우 옆동네 반지하로 옮겨갔습니다. 그의 짧은 이주 반경을 두고 좁은 시야를 탓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노인에게는 익숙한 일거리를 유지하면서 몸이 불편한 남편, 출퇴근할 일터가 있는 손녀도 고려한 제일 나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225쪽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이런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보존할 대상은 천막이나 지붕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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