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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오/박다짐 역] 미국 헌법을 읽다(2015)

독서일기/미국

by 태즈매니언 2024. 2. 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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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올해의 책 한 권을 추가하네요. 대만인 저자 양자오님에 대해서 아예 처음 들어봤는데, 도서출판 유유에서 동서양 고전읽기 시리즈를 중심으로 무려 25권이나 번역출간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분이셨군요.
제가 졸업한 로스쿨엔 미국 헌법을 전공하신 교수님도 계셨지만 수험법학만 공부하다보니 미국 헌법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300페이지 남짓의 문고판에 미국의 헌법 제정 과정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풍부한 내용과 핵심적인 통찰을 줍니다. 미국에도 넛셀시리즈라고 이런 역할을 하는 책이 있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한국보다도 짧은 대만인이라는 국외자의 시각이라 한국인들에겐 훨씬 전달력이 높네요.
미국의 연방정부 구성을 위한 제헌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사례를 생각해봅시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후, 그는 하와이 서쪽에서의 무력투사를 포기합니다. 중국 습근평이 일으킨 대중화전쟁은 동북아의 한국, 일본, 대만부터 시작했지만, 위기를 느낀 아세안국가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은 물론 오세아니아의 호주, 뉴질랜드까지 연합을 구성하여 8년 동안 맞서 싸운 끝에 중국의 침략을 패퇴시킵니다.
하지만 북경의 독재정권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상황이고, 중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연합국의 전쟁수행을 지원했던 미국도, 연합국들에게 무리한 이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이 종료되자 그동안 발행한 전쟁채권의 상환부담은 물론, 연합국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불거져나오고 있으나, 연합협의체는 마치 지금의 EU의회나 평의회처럼 아무 것도 결정을 못하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3개국에서 파견한 너댓 명 이내의 대표들이 127일 동안 완전한 정보비공개 상황에서 입장도 마음대로 바꾸고 하고싶은 말을 다하며 토론한 끝에 연합협의체를 삼권을 가진 영속적인 연방정부로 개편하는 7개조의 헌법제정안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13개국 정부는 각자 제헌의회를 구성하여 차례로 헌법을 비준하였는데, 인도네시아와 같은 대국들에 밀려 자국의 권리를 관철하기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회의에도 불참했던 싱가폴이 오랜 진통끝에 가장 마지막에 연방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예전에 헌법교과서의 영향으로 헌법학에서 기본권론이 권력구조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우리나라의 개헌논의가 대부분 권력구조론에 집중되는 것이 마뜩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국민들이 임대차 계약으로 예를 들자면, 국민들이 영구적인 임차인에 해당하는 국가에게 자신들이 소유한 주권을 어떻게 설계해서 임대해야지 그 소유권을 완전히 뺏겨버리지 않을 것인지가 계약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18세기 미국 독립 당시에는 군주정과 귀족정이 여전히 주된 정치체제였던 시절이고,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과처럼 소국과민에나 알맞는 정치체제로 여겨졌던 시대에 없던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미국 헌법의 선거인단제도나, 민병대의 무장할 권리에서 나오는 총기소유의 자유 등을 가지고 비웃기도 하고 미국 헌법의 거의 비슷하게 모방한 국가들이 많지만, 이 책을 덮고 나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 중에서 미국의 헌법이 지금도 가장 훌륭한 국가운영체제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올해 11월 트럼프의 재집권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고자 상상했던 전례없던 정치체제가 앞으로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복원력이 가장 높은 헌법이니까요.
또 미국과 달리 긴 독자적인 역사, 다른 언어와 종교라는 불리한 제약을 가진 유럽연합이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이유도 쉽게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미국이 NATO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와 중동+북아프리카 연합군이 침공하여 EU와 10년 전쟁을 벌인다면 과연 EU가 '유럽합중국'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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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우리가 보통 '독립선언서'라고 부르는 이 문건의 원문 전체 제목은 'The 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stes of America'이다. 번역하면 '아메리카 13개주에서 공동 발표하는 만장일치 선언'이다.
33쪽
우선 연합하여 영국에 대항해 새롭게 독립한 13개 주는 그제야 서로의 관계를 고민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1777년, 독립선언서에 연서한 13개 주는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을 체결해 13개 주의 공동 행동 강령을 제정했다.
84쪽
연합에는 지역의 정부를 뛰어 넘어 지역 내부의 인민을 직접 규제하거나 통할할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주권(主權)은 주(州)에 있었으며, 각각의 주는 루소의 이론을 끌어와 저마다의 헌법을 제정했다.
37쪽
역사기록을 보면 미국이 설립된 지 9년째 되던 1785년에도 13개 주 가운데 9개 주가 자신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125쪽
1781년, 연합대표회의에서 연합 군대 재건을 위해주마다 얼마간의 경비를 분담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예정된 납부 마감일까지 실제로 들어온 금액은 결의된 금액의 약 16분의 1뿐이었다. 16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1을 쥐여 준 격이다. 이런 연합이 어떻게 제 기능을 할 수 있었겠는가?
38쪽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15개 주 가운데 7개 주가 먼저 결합해 새로운 깃발을 내걸었고, 그것이 '아메리카 남부맹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다. 이러한 남부의 선택은 돌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명백히 연방보다 먼저 역사에 존재했던 조직인 연합을 근거로 한다.
40쪽
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이 회의는 훗날 역사에 '제헌 회의'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바로 이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회의가 준비되고 개최되던 역사의 순간에는 누구도 이 회의가 그 중대한 '제헌 회의'가 될 줄 몰랐다. 다수의 회의 참가자는 자신이 '각 주 사이의 상업 및 무역 관계'를 토론하고 협상하러 았다고 믿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당시에 '제헌 회의'를 열자고 했다면, 이 회의는 절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고, 훗날 헌법의 초안 역시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 회의가 '제헌 회의'가 될 줄 알았다면 많은 주에서 아예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을 것이고, 회의가 열렸다고 해도 과반수의 대표가 '제헌'에 반대해 회의가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45쪽
필라델피아 회의의 절차는 우리의 상식과 매우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결의를 번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대표가 앞서 표결한 결의의 번복을 제기할 수 있었고, 번복이 제기되면 그 안건을 다시 토론하고 투표했다.
47쪽
회의 첫날, 대표들은 회의를 비공개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모든 대표는 반드시 비밀 보장의 원칙을 준수해야 했고, 회의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절대 외부에 유출할 수 없었다. 회의에서 현재 어떤 안건을 토론하고 있는지, 누가 어떤 입장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어떤 안건에 찬성 혹은 반대 표를 던졌는지 등등이 모두 비밀 항목에 속했다.
49쪽
(조지) 워싱턴은 여러 중대한 조문에서 대표들의 숙고에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연방 대통령을 두는 문제로 토론할 때, 대표들은 대통령이 필요해서 뽑기로 한다면 제1대 대통령은 워싱턴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을 세우는 일에 공공연하게 반대한다면, 이는 워싱턴을 공격하거나 부정한다는 의미를 떨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 사실에 영향을 받았다.
51쪽
언제든 결의된 사안을 번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었기에, 어떤 조항을 두고 결사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략)
장장 127일 동안, 각 주의 대표가 자신의 모든 의견을 온전히 그리고 충분하게 표명할 기회를 가졌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거듭해서 말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한 주 한 주의 득과 실을 따져 전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어느 한 부분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입장도 바뀌었다.
67쪽
실제로 1789년 4월 워싱턴이 미합중국 제1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했을 때, 그의 직권 아래에 관할 구역으로 들어간 주는 13개가 아니라 11개였으며, 헌법 인가 회의를 마치지 못한 2개의 주(노스캐롤라이나, 로드아일랜드)가 남아 있었다.
68쪽
100여 일 동안 비공개회의는 기적처럼 보안을 유지했지만, 이로써 불가피하게 외부의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했다. 필라델피아주에서 북미 각 주에 이르기까지, 처음에는 냉담했던 여론과 대중의 태도는 점차 열렬해졌다.
사람들은 이들이 매우 중요한 일을 토론한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회의가 이렇게 길어질 수 있겠는가? 회의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회의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나중에는 누구나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회의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에게는 결론 없이 회의를 끝낼 퇴로가 더욱 없어졌다. 헌법 초안을 들고 나오는 것말고는 회의가 그토록 길어진 까닭을 합리화하고, 급증한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킬 길이 없어 보였다.
72쪽
연합처럼 느슨한 조직을 유지한다면 (필라델피아회의에 불참한) 로드아일랜드주의 이런 겉도는 태도, 공동체 안위와 화복은 안중에도 없는 마음가짐,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권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조그맣고 인구도 적은 주가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붙잡으려 들다니. 로드아일랜드주에 대한 미움과 비판은 미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연방의 권력이 큰 폭으로 확대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70쪽
미국 헌법 초안 제7조가 규정하는 바는 무척 간단하다. 헌법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9개 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문의 핵심이다. 하지만 각 주가 어떻게 제헌 회의를 개최하고, 어떤 절차로 헌법을 통과시킬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각 주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입장을 존중하고 따른다.
74쪽
정해진 제헌회의 양식이 없었던 덕에 이 2~3년간 모든 주가 미국 헌법을 둘러싼 열성적이고 시끌벅적한 토론에 몰두했다. 헌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토론하기 전에 먼저 주의 제헌 회의를 어떻게 열지 구상해야 했고, 빠른 시간 내에 더 많은 사람이 헌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76쪽
<연방주의자 논고>는 헌법이 인가되는 과정에서 떠밀리듯 탄생한 글이다. 세 저자는 헌법 인가 회의에서 각 주의 인민이 헌법을 지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했다.
(중략)
<연방주의자 논고>는 미국 헌법에 대한 해석을 최초로 제시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중 두 사람은 필라델피아 회의의 주역이었고, 그 중 한 명은 무결석 참여자였다.
87쪽
'더욱 완전한 연맹'을 토론하던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회의를 하던 대표들은 자연히 1707년에 '그레이트브리튼'이 정식으로 설립된 일을 떠올렸다.
(중략)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레이트브리튼이 조직되는 것을 몸소 겪은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 역시 1707년에 조직된 연합 왕국이 어떠한 효과를 낳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보기에 영국의 강대함은 바로 이 연맹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102쪽
왜 'Parilament'가 아는 'Congress'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이 이름은 연합규역에서 이어져 왔다. 연합규약에서 연합의 최고 권력 기구로 규정한 '각 주 대표회의'의 이름이 'Congress'다. 사람들에게 'Congress'는 비교적 진중한 회의이지만, 여전히 회의에 불과할 뿐 상설 기관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Congress'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이유는 연방이 야기할 수 있는 충격을 줄이고, 각 주에 연방과 연합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109쪽
1913년, 미국 헌법 제17조 수정 조항에서는 기존의 간접 선거 방법을 취소하고 상원 선거 역시 시민의 직접 투표로 이루어지도록 고쳤다. 이렇게 하면 상원이 주가 아닌 주의 인민을 대표한다는 헌정 입법 정신에 더욱 부합했다.
121쪽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는 모든 의회의 의원이 '민의의 대표'이지만, 미국 헌법에서 구상된 바는 달랐다. 상원의 역할이 자문이나 고문에 가까웠다. 그들은 각 주에서 파견된 이로, 한편으로는 연방정부가 정무를 잘 처리하도록 힘을 보탰고, 한편으로는 하원이 적절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도왔다.
(중략)
상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하원의 우둔과 악이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특히 상원 자신이 속한 각 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했다.
123쪽
2년마다 한 번 선거를 치르고, 10년마다 한 번씩 인구통계를 내며, 이에 맞춰 선거구와 하원 의석수를 조정하는 것이 미국 헌법이 제정한 정치 흐름의 순환 원리다.
(중략)
헌법은 고정되지만, 미국 헌법의 규정들은 어떻게 변동에 대응할 것인지, 어떻게 변동과 단절되지 않을 것인지를 내포한다. 즉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변동을 충분히 인식한다.
127쪽
헌법 문장의 통합 정리를 맡았던 제임스 윌슨과 로버트 모리스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노예'라는 단어를 헌법에 그대로 넣지 않으려 했다. 헌법에 '노예'가 등장하면, 연방이 법적으로 노예제를 인정한 것처럼 보일뿐더러 나중에 노예제를 폐지할 때 헌법 개정이라는 난관을 하나 더 보태게 될 터였다 이러한 이유로 두 사람은 에두른 표현(자유인이 아닌 기타 인구)을 쓴 것이다.
128쪽
이 두 가지 요소를 두고 고심한 끝에 이러한 타협이 이루어졌다. 노예는 인구수에 포함되기도 하고 포함되지 않기도 한다. 셈하되 온전한 숫자로 산정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정치 권리도, 세금 납부의 의무도 5분의 3명 몫만 주어진다. 만약 남부에서 노예 유입으로 인구수를 확충해 대표 의석수를 늘리고자 한다면, 그들은 노예를 사들이는 돈 외에도 노예가 경내에서 살아가는 데에 따르는 직접세를 부담해야 한다. 즉 원가를 늘리는 방식으로 남부가 노예를 늘리려는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131쪽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를 거두고 나서야 마침내 1868년에 통과된 헌법 제14조 수정 조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5분의 3 조문' 역시 폐지되었다.
146쪽
권리장전은 미국 헌법 수정 조항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를 말한다.
(중략)
권리장전에는 특수한 역사 배경과 의의가 있다. 1789년, 미합중국의 제1대 의회가 가동되고 처음 한 일이 권리장전에 대해 토론하고, 3분의 2라는 압도적인 표수로 이를 통과시킨 것이었다.
10개의 수정 조항이 하나로 묶여 권리장전이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여기에 인민의 권리 보장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수정 조항은 의회의 권력을 제한하고 축소한다. 이제 막 설립된 의회가 다른 일을 제쳐 두고 바삐 착수한 일이 자기 권력의 축소였다. 이는 스스로의 손발을 묶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150쪽
다시 제헌 회의를 열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먼저 만들어진 헌법 초안에 권리장전이 빠져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모두에게 새로운 제헌 회의를 열 필요가 없음을 납득시키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제1대 의회에서 가능한 한 빨리 권리장전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184쪽
조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미국 대통령 7대가 지나는 동안 법적으로 남성 자손이 있었던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명뿐이었다.
(중략)
18세기에서 19세기 초의 시대 분위기상 미국인은 민주 체제가 군주제로 후퇴할 것을 매우 걱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아들을 위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르는 대통령 선출을 무척 염려했다.
191쪽
미국에서 공직에 종사하는 이는 어느 주 사람이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공표할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공표해야 한다. 이는 루소의 주권재민 개념을 실천한 것이다. 헌법이 곧 인민 주권이며, 우리 인민들에 의해 제정된 것이므로 반드시 헌법을 받들어야 한다. 공공 영역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한다. 우리 인민들을 믿지 않는, 우리 인민들에 복종하지 않는 이는 공적 업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
195쪽
미국 헌법에는 국민의 의무에 대한 규범이 없다.
(중략)
헌법은 인민이 주권을 양도해 정부를 조직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계약 발의의 주체는 인민이다. 중요한 점은 본래 인민에게 속하던 권리를 정부에 부여해, 정부가 행사하는 공권력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건의 목적은 정부가 본래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인민의 동의하에 양도된 권리를 오용 및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요구하는 것으로 일종의 차용증과 같다.
(중략)
이 차용증에 돈을 빌려주는 쪽에 대한 규범이 있을 리 없다.
222쪽
당시에는 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자격기준이 주마다 달랐고, 그 기준마저 자주 변경되었다.
(중략)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주에서 형성된 유권자가 한 사람당 한 표씩 행사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중략)
이를 해결하려면 저마다 다른 각 주의 선거권 자격규범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주에 선거인을 선출할 권한을 부여해야 했다.
230쪽
미국 헌법이 정한 대통령 후보자 자격이 각 주에는 부담으로 다가갔다. 연방이 정식으로 성립된 후, 각 주는 주도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정치 정세에 대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들은 재산 조건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주 헌법을 검토하고 수정했다. 연방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주에서 주 의원 혹은 주지사를 맡을 자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긴 하다.
250쪽
서약서에서 대통령이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하겠다고 서약하는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헌법이다. 국가는 추상적이다. 무엇이 애국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일인지를 정의하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그에 반해 헌법은 명확하다. 헌법을 보전하고 보호하고 수호하는 일에는 그리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252쪽
헌법은 누구에게도 새로운 주를 창설할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헌법이 관할하는 것은 각 주가 결합하여 구성한 연방이다. 만일 연방이 자체적으로 창설한 새 주를 영입한다면, 이는 각 주의 이익을 침범하는 것뿐 아니라 주권(州權)을 침범하는 일이었다.
(중략)
만일 다른 어느 나라에서 한 대통령이 병졸 하나 보내지 않고 1에이커당 평균 4센트라는 저가로, 단번에 국가 영토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공로가 될 것인가! 하지만 미국에서만 이 일로 제퍼슨에게 돌아온 것은 영예가 아니라 물의와 질책이었다.
264쪽
13개 주 가운데 9개 주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조약체결 비준시)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비율의 근거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조약 체결권은 헌법 제2조에 적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방 행정권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309쪽
사법권을 규범화하는 제3조는 도합 3절뿐이다. 그나마도 제3절은 반역죄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으로, 사법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필라델피아 회의의 대표들은 사법권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략)
헌법에서는 최고 법원을 'one supreme Court'라고 한다. 'Court'만 앞 글자를 대문자로 쓰고 'supreme'은 소문자로 쓴다. 현재 '연방 최고 법원'의 정식명칭은 'Supreme Cour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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