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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 나의 막노동 일지(2023)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4. 4. 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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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글이 책으로 엮어져서 나왔네요. 27년간 신문사 기자로 일해오면서 편집국장과 논설위원까지 일하셨던 분이 50대 중반에 건설현장에서 조공으로 일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경험 외에 현장 일거리가 끊겼을 때의 심정들도 인상깊었고요.
책 분량의 절반 정도는 건설현장이야기가 아니지만, 구내식당의 주방보조, 경비원, 대리기사 등등 은퇴한 남성들이 시도해볼법한 일자리에 대한 간접경험 이야기들이 오래 다닌 직장을 나온 뚜렷하게 든든한 노후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60년대생 화이트칼라 남성의 심리를 엿보기에도 좋네요.
기술을 배워 '기공'이 되기는 이미 늦은 나이, 240일 동안 하루 빼고 매일 대기업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관절과 신경, 근육들을 생각하면 저자 나재필님께서는 앞으로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중견기업 건설현장보다 더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도 담담하게 받아들면서, 충실한 하루를 보내며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도 관찰하면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품위있는 어른의 모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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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쪽
막노동은 결코 슬픔으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때론 남이 일한 흔적까지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126쪽
440g의 안전모는 헤드랜턴과 보호안경 등을 장착하면 무시할 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게다가 현장 밖을 나가지 않는 이상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절대로 벗으면 안됐다. 종일 머리를 억누르는 안전모는 목까지 뻣뻣하게 만들었다.
262쪽
어느 날 갑자기 아침이 사라졌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간단히 밥을 먹고 몸단장을 끝낸 후 문밖에 나서는데 아뿔싸, 갈 곳이 없었다. 백수란 걸 깜빡 잊었던 것이다. 습관처럼 출근하려 했던 나의 무의식이 문득 서글퍼졌다. 어디선가 '당신, 일 쉰 지 꽤 됐고, 퇴직한 지는 더 오래됐어.'라는 환청이 들렸다. 다시 집 안으로 몸을 들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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