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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울산 디스포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24. 4. 2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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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2019)로 제게 충격적인 감탄을 안겨주신 양승훈 교수님께서 한국 제1의 산업도시 울산을 통해 국내 산업도시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분석하셨네요.

현학적인 이론을 동원하지 않고 지금 우리들이 처한 핵심적인 문제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조귀동 작가님과 함께 제가 꼭 찾아보는 분이신데 이번 책도 역시 제 올해의 책 후보로 올립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쾌하게 근거를 제시하며 논지를 풀어나가는 3부까지와 달리, 울산의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 방안에 대한 제4부는 이것저것 단편적인 제안들을 모았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전성기의 끝자락을 구가하다가 낙차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쇠락하기 시작한 오랜 산업도시를 다시 일으키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죠.

저는 내생적인 노력은 부울경 광역철도에 대한 집중 투자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울산의 중흥은 외생적인 요인에 좌우된다고 보니까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정도가 역사적인 피크였고, 이러한 영화를 다시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저처럼 울산이라는 제조업 도시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낮게 본다면, 그간 쌓아온 세계 1위의 조선소, 세계 최대의 양산가능한 자동차 공장, 석유화학 콤비나트라는 기존 자산을 활용해서 오래 버텨야죠.

중국이 유럽과 미국의 중공업 제품 시장에서 철저히 배제될 정도로 미중 블록화가 공고해지고, 오늘 잠깐 1달러당 160엔을 찍은 일본처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600원 위로 치솟아야, 울산이 제조업 경쟁력을 좀 더 오래 유지하면서 하이엔드 제품 생산기지로서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길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나 중앙부처의 리더쉽이야 요즘 상황을 보시면 아실테고, 울산광역시장님이 양승훈 교수님을 초빙해서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저자 강연회를 열어서 직접 질문도 하고 별도의 시장 직속 TFT를 꾸릴 정도의 리더쉽도 기대하기 힘든데, 지방정부 자체적으로 무슨 변화가 창출될 수 있을지. 만약 이런 소식이 들려온다면 조금은 희망이 보이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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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쪽

산업도시 울산의 맹아는 일제 강점기의 석유 비축기지 건설에서 시작된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구상을 들여다보면 '왜 울산이었는가'하는 질문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바로 제국주의 일본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측면이었다.

103쪽

1990년대를 지나면서 두 가지 층위에서 구상과 실행의 지리적 분리를 추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선 제조 대기업은 적대적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서도 생산량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중략)
현대자동차는 점차 IT기반 공정 관리 기술과 NC가공 기계 도입을 극대화하여 자동화를 촉진시키고 로봇 도입을 진행했다. 노동자가 반복 작업을 덜 맡아 개개인은 편했지만 현장에서 노동자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른바 '숙련 절약형 혁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189쪽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포스코의 사례를 함께 살펴보면 노사관계가 어떠한 역사적 궤적을 거치며 형성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생산성 동맹은 노사관계가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가능하다. 포스코의 생산성 동맹은 노사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나 복지뿐 아니라 생산성 관점에서 노동자의 숙련 형성 자체가 영향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사관계의 신뢰는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노사 분규와 갈등을 어떻게 조율했느냐에 달려있다.

204쪽

정규직 생산직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숙련 형성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약속을 서로 하지 않는 이상 회사는 정규직 생산직 채용을 극도로 꺼린다. 현재의 노동조합이 세운 울타리는 울타리 바깥의 사람에게는 '격차'와 '차별'로 느껴질 뿐이다. 더불어 여성으로 하여금 오로지 생계 부양자 '남편의 벌이'에 기대고 스스로 전일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울산의 고용 사정은 중장기적으로 여성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90쪽

결국 울산은 역사적으로 형성해 온 궤적을 고려하면서도 새로운 '평범한 노동자 중산층'을 다시금 구축하는 작업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산업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생산직 중심주의를 깨고, 정규직 중심주의도 깨면서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거듭 언급했지만 울산은 산업도시의 맨 앞에 있는 선두주자이자 가장 규모가 큰 도시다. 새로운 산업도시 울산의 전환 모델이 창원, 거제, 포항 등 부울경의 산업도시를 넘어 전국 제조업과 산업도시의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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