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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데즈먼드/성원 역] 미국이 만든 가난(2023)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24. 8. 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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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전공이 사회학이었다고 프로필이나 이력서 보낼 때 매번 의식하게 되지만, 비전공자에게 교양서로 추천할 사회학자의 책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이론적 탐구가 담긴 책보다는 참여관찰에서 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거리의 인생>처럼 문화인류학과 칵테일된 느낌을 좋아합니다. 국내서로는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를 권하고요.

2016년에 논픽션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해서 매슈 데스몬드의 <쫓겨난 사람들(Evicted)>을 찾아읽었는데 인상깊었던 터라 이 분의 후속작 <미국이 만든 가난>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하버드대 교수에서 프린스턴대로 옮기셨더군요.

에필로그까지 겨우 300페이지밖에 안되는데 밀도가 높은 책입니다. 앞의 100쪽까지는 이거 다른 데서 많이 본 내용들이라 좀 심드렁했네요. 이후 150페이지까지는 전작에서 연구했던 내용에 사례 업데이트라 실망하고 덮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을 다 보니 사회학 교양서로 충분히 추천할만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미연방대법원이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를 위헌이라고 선고한 판결이 백인들의 공공인프라투자에 대한 저항과 이어지는 감세정책으로 결국 미국의 공공인프라의 붕괴에 영향을 미친 점, 근로의욕을 지닌 빈곤층 지원에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근로소득장려제도가 대기업의 인건비 절감에 악용된다는 지적, 소위 토지용도지구규제(zoning)이 백인 중산층들이 소셜믹스를 거부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서 이들로 하여금 인프라를 사적으로 구매하게 만든 점 등이 특히 인상깊더군요.

제가 보기에 저자 매슈 데스몬드가 빈곤 퇴치를 위해 제안한 정책들을 실현하면 미국이 서유럽 EU국가에 가까워질 것 같더군요. 하지만 지금 EU의 경제상태와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감안하면 그게 과연 옳은 길일지 의문입니다.

저도 '도시는 인프라가 집적된 공간플랫폼'이니 공공인프라가 보편적 복지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중국에 무분별하게 건설된 유령도시들 사례도 있고, 인간의 원초적인 구별짓기 문화를 소셜믹스로 소화하려면 다양한 일자리들이 균형잡히게 제공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어서 미국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어 보여서요.

그리고 미국은 이민자 국가인데 국민들이 빈곤퇴치를 위해 자신들의 부유함을 일부 포기하려면 EU처럼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민이 일치단결할 외부위협은 외계인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으니, 결국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려면 일단 국경부터 걸어잠궈야 할텐데, 매년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도시빈민과 비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흐릿하게 섞인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서 접착제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그래도 이 책을 보니 연방 차원에서 한국사례를 참고해서 현재 지나치게 엉망인 정책들 몇 가지만 고치면 미국의 인종갈등을 첨예화시키는 도시빈민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오만한 중국을 압도한 미국의 장기 패권을 보여주는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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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쪽

빈곤은 단순히 충분한 돈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다. 충분한 선택지가 없고, 그 때문에 이용당하는 상태다. 사람들이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착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간과할 때 우리는 기껏해야 부실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설계하게 된다.

159쪽

데이터를 파고들어보면 문제는 복지 의존성이 아니라 오히려 복지 회피라는 게 금세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서 많은 가난한 가정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도 보조금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근로장려세제를 받을 수 있는 약 700만 명이 신청을 하지 않아서 1년에 총 173억 달러를 날린다. 여기에 사람들이 푸드스탬프(134억 달러), 정부 의료보험(622억 달러), 구직기간 중 실업급여(99억 달러), 그리고 생활보조금(389억 달러)을 타 가지 않아서 남은 돈을 더해보자. 이것만 해도 사용되지 않은 보조금이 약 1,420억 달러에 달한다.

185쪽

지난 50년 동안 미국인의 개인소득은 317% 증가했지만, 연방의 세수는 겨우 252% 늘어났다.

194쪽

미국연방대법원이 토지이용규제를 통한 노골적인 인종 분리를 금지한 뒤 애틀랜타는 두 가지 주거구역을 'R-1 백인 지구"와 "R-2 유색인종 지구"에서 "R-1 주택 지구"와 "R-2 아파트 지구"로 변경했다. 의회가 1968년 주거지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법안을 통과시킨 뒤 이런 배제적인 토지이용규제법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중략)
민건운동기간 동안 백인 엘리트들이 공원과 공설 수영장의 인종 분리 철폐를 지지했던 것은 어차피 자기들은 그 공간을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사적인 클럽이 있었으니까. 이는 백인 노동계급의 분노를 샀고 성난 백인 노동계급은 인종 분리 철폐를 "부자를 뺀 나머지 모든 사람의 통합"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에 부유한 백인 자유주의자들이 자기 동네의 토지를 좀 더 포용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법률을 변경하는 것에는 저항해 놓고 강제적인 버스 통학제를 지지한 것은 그들이 사는 교외 동네에는 그 정책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이는 백인 블루칼라에게 엘리트와 그들의 제도 - 대학과 과학, 전문 언론기관과 그들의 기준, 정부와 그 점잖음-을 향한 고약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정치적 지지와 정치화된 분노를 낳았고, 이는 오늘날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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