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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어떤 동사의 멸종(2024)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4. 7. 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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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나 르포식 소설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에 비견할만한 한국의 자랑스런 르포문학 작가 한승태님의 세 번째 책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콜센터, 택배 상하차 일용직, 한식부페 주방, 도심 오피스빌딩 미화원 네 가지 직업을 해본 경험을 정리했는데요. 쓰는 사람이 관찰자로 남는 르포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몸을 써서 일을 하는 당사자로서 느낀 심정과 체득한 관점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알바도 안해본 사무직 아재로서 감사히 읽었습니다.
한승태님이 아마 80년대 초반생이신 것 같아서 나이대도 비슷하니 더 몰입이 되네요. 게다가 네 직업 모두 한국사회에서 40대 초반의 건강한 남성이 초보로 시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직업이기도 하니까요.
AI상담사, 택배 하차로봇, 주방 로봇, 로보청소기 등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아직 초기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한 사라져가는 직업들이죠. 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한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 2020년대 초반에 어떻게 일하고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감사해하며 읽었습니다.
마지막 '쓰다'장은 한승태 작가님의 자서전 느낌으로 읽었는데, 이제 가정도 이루신 상황이라,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세 권과 같은 노동에세이는 더 이상 쓰시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운 예감이 드네요.
평소에 웹소설을 꼬박꼬박 읽는 편인데 어쩌면 제가 매일 보고 있는 작품 중에서도 AI 스토리텔링 엔진이 생산한 글들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오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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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간에게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 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2쪽
비록 내게는 잠시 지나가는 일자리였지만 나와 함게 일했던 동료들에게는 과거부터 해왔고 또 내가 떠난 후에도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었고 귀담아들을 만한 무게를 지닌 호소였다. 독자 여러분이 너그럽게 이 책의 넋두리를 우연히 그들 곁에 있었던 내가, 함께 일한 동료들을 대신해 전하는 것이라고 여겨주셨으면 어떨까 싶다.
62쪽
내게는 양돈장과 콜센터를 비교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전자가 항문으로 똥을 싸는 동물의 뒤처리를 하는 곳이라면 후자는 입으로 똥 싸는 동물의 뒤처리를 하는 곳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두 종류의 동물들과 모두 일해본 관점에서 말하건대 양돈장이 단연코 수월하다.
돼지의 배설물은 따뜻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씻어낼 수 있지만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은 1년, 2년이 지나도 말끔히 사라지는 법이 없고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140쪽
하루에 평균 열 대 작업하고 한 차에는 짐이 1,000개, 평균 중량은 5킬로그램이다. 이걸 두 사람이 작업하면 한 사람당 하루에 운반하는 총 중량은 25톤이다. 전체 화물 중 3분의 1 정도는 옮길 때 몸을 굽혔다 일어서는 동작을 수반하므로 하루 전체에 걸쳐 그런 동작을 반복하는 횟수는 적게 잡아도 1,500번이다. 즉, 하루에 25톤과 1,500번이다. 한반도에서 하루에 이 정도 신체 활동량을 요구하는 곳은 물류센터를 제외하면 태릉 선수촌뿐이다.
146쪽
대한민국 최고의 일출 명소를 고르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택배 물류센터를 꼽겠다. 화가들에게 까대기 새벽 근무를 권하고 싶다. 새벽 근무 마치고 접하는 아침 햇살은 일종의 개안의 경험이다.
222쪽
주방은 극단적인 습관의 장소다. 모든 것이 내가 평소에 하던 대로 굴러가야 한다.
(중략)
주방에서 재료, 도구의 위치는 조리법의 일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게 더 편하고 효율적이라서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내 입맛엔 이게 더 낫다면서 내 마음대로 조리법을 바꿔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은 행위다.
247쪽
식당은 작업장으로서는 굉장히 특이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일종의 공연장이다. 가수들이 콘서트장에서 느끼는 희열을 요리사들은 주방에서 느낀다(공연이 끝난 후의 공허함도...)
(중략)
나는 좋은 일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을 덜 외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요리가 그렇다. 홀로 주방을 지키는 날에도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다보면 누군가와 만족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기분이 든다.
344쪽
이 일은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이 터널의 입구와 출구처럼 붙어 있다. 청소가 우리에게 부단히 일깨워 주는 것은 성취의 감각이다. 청소는 뒤돌아볼 때 의미를 찾게 되는 일이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난장판을 정리하고 극명하게 달라진 '비포'와 '애프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 특히 이런 똥구덩이나 다름없는 곳을 깨끗하게 치우고 뒤돌아보면 선사시대 고대인들이 매머드를 쓰러뜨렸을 때 느꼈을 법한 뿌듯함이 온몸에 솟구쳐 오른다.
395쪽
제목은 그가 후배에게 평을 구했던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이었지만 내용은 달랐다. 그것은 한승태의 소설 설정 그대로 스토리텔링 엔진에 입력해서 생산한 원고였다.
(중략)
인물들의 이름, 장소 전체적인 줄거리 모두가 동일했다. 그런데도 너무나 달랐기에 기이하기만 했다. 거기에 있는 이야기는 자신의 능력에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은 전문가가 최초의 아이디어를 망설임 없이 그대로 밀어붙여 오나성해 낸 결과물이었다. 그 안에는 한승태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가 쓰고 싶었던 문장에 담겨 있었다. 다만 그중에 어느 것도 한승태가 쓴 것이 없었을 뿐이다. 실력 차가 너무나도 확연했기에 화가 나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부끄러웠다. 이런 걸 가지고 대단하다고 믿고 있었구나.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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