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별로 안보고, 지적인 근력이 떨어져서 벽돌책들에도 손이 잘 안가는 제가 요즘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논픽션인 것 같습니다. '비소설'이라고 하면 소설이 아닌 모든 산문들이 다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논픽션은 에세이, 교양서와는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신문사들의 5~8년차 젊은 기자들이 국내외의 '좋은 기사'를 공유해서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책인데, 저처럼 논픽션 장르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네요. 이 책에서 추천한 책들만 골라 읽어도 당분한 읽을 책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논픽션을 읽어본 분은 12명 중 3명 뿐이었습니다.
한국출판시장 규모에서 작가가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은데 비해서 판매고가 부진했던 문제가 인물과 장면을 중심으로 하는 논픽션이 OTT 영상화에 제격이라 활로가 보이는 점도 다행스럽네요.
좋은 기사를 잘 쓰는 훈련된 언론인 출신과 함께 처음에는 직업에세이로 책을 낸 분들이 자기 업계 주변의 사건과 인물을 관찰해서 논픽션에 도전해보는 흐름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좋은 논픽션은 평균적인 작품의 수명이 훨씬 길기 때문에 작가로서 보람있는 일이니까요.
책을 읽고 나니 기자, 논픽션 작가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재능이나 덕목이 '호기심'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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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가의 실수나 잘못을 담아내는 틀로 생각하고 있어요.
프로가 어떤 효훈이랄까,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오직 작가의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보여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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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하지만 글로는 묘사 가능한 것이 무엇일까 꾸준히 의식했어요. 일하는 동안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부화장 냄새나 닭 날개가 부러진다는 자체는 사진으로만 보면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오감, 특히 후각이나 촉각에 집중했어요.
어떻게 쓰느냐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슈를 우리가 버리지 않고 담아낼 수 있느냐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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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 입이란 게 실제로는 '이문영'이라는 타인의 글에 불과하고, 살아 있는 자가 고인의 시점을 자처한다는 것이 건방지다고 할지라도요.
어느 순간 그 사람의 곁에,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듣게 되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어낸다고들 하는데,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도 먼저 잘 들어야 해요. 그런데 기자들이, 역설적이지만 잘 안듣잖아요. 질문하는 법은 수없이 훈련하지만 누구도 듣기를 가르쳐주진 않죠. 때로 듣고 싶은 걸 듣기 위한 질문을 준비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 질문을 생각하기도 하고요. 질문을 잘해서가 아니라 신뢰하기 때문에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신뢰는 결국 시간으로 쌓는 것일 테고요. 저는 빨리, 먼저 가는 기자이기보다는 가장 오래 머물고 늦게 나오는 기자이고 싶어요.
달리기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살면서 사람이 멍 때리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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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리기할 때는 뭘 할 수가 없잖아요. 멍한 상태에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이디어를 많이 구상했어. 그리고 꾸준히 달리면 건강해져요. 단기적으로는 한 시간 달리기를 한 시간 손해로 느낄 수 있지만, 운동 오래 하면 글 쓸 체력이 생기니 장기적으론 이익이에요.
Q : '안 팔리는' 논픽션, 왜 쓰셨나요?
A : 그러게요. 보통 쓰는 데 들인 노력 대비 판매량은 에세이가 가장 좋거든요. 에세이 쓰는 것의 몇 배 힘든 게 소설이고 소설의 몇 배가 논픽션이에요. 정작 논픽션은 잘 안 팔리죠. 근데 왜 쓰냐고 물어보면 정말 할 말이 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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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논픽션 소재를 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A : 시대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픽션은 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일간지 기사도 아니잖아요. 단행본으로 나오기 때문에 필히 몇 년을 읽혀야 하죠. 그날그날 읽고 더 이상 안 읽히는 글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읽히는 글도 있어요. 그런 글이 되려면 문제의식 자체가 최소한 10년은 가는 것이어야 해요.
산문을 잘 쓰려면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언어에 대한 천착이 있어야 울림이 있는 산문을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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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픽션처럼 재미있게 쓰면 논픽션이 됩니다. 예를 들면 기사가 육하원칙을 기록한 글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언제, 누가, 어디서'는 불변이죠.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왜'는 해석의 각도에 따라 완전 다르게 쓸 수 있어요.
사람은 자기 과거를 합리화하면서 살려는 습관이 있어요.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선 스스로의 기억도 바꿔요. 인간은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인지부조화를 메우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존재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인간일지라도 이해하려는 노력,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면 훌륭한 논픽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어떤 출입처든 우리나라 언론사 대부분이 이래요. '쟤는 이거 썼는데 너는 왜 이거 썼어?' 이렇게 갈구지, '너, 왜 쟤랑 똑같이 썼어?' 이렇게 갈구지 않거든요. 다른 데서 했으면 우리도 해야 된다. 딱 이거예요. 저는 남들이 뭘 썼는지보다 거기 나오지 않는 내용들, 사건의 이면이 항상 궁금해요. 이 사람은 왜 저랬을까, 저 사람은 왜 저랬을까 하고요.
르포 논픽션 작가는 캐릭터와 장면을 취재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라는 글쓰기 격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 중심 구성을 통해 사건과 인물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보통 한국 출판시장의 지식교양 논픽션과 구별되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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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캐릭터예요. 데일리 저널리짐과의 가장 큰 차이점 같아요. 그 인물의 근본적인 동기, 말투와 버릇 등 인간성을 보여주는 디테일 등이 캐릭터이죠, 한국 기자들은 육하(5W1H) 취재를 집중 훈련받지만, 인물 취재는 별도로 훈련받지 않아요. 어렵고 복잡하며 정답이 없는 취재가 인물 취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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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취재를 위해 접촉한 게 32명, 실제로 만난 것은 20여 명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 숫자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쓴 논픽션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영화가 되지 못한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논픽션은 그 자체로 완성된 건축물이에요. 영상화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논픽션은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죠. 영상화가 유일한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에요.
지시와 보고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취재가 이뤄졌다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일종의 편집회의를 거치게 되니 결과물의 질도 더 좋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 혼자 자료를 찾고, 글로 정리하는 일은 다른 측면이 있어요. 의문을 풀어가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갈 때 느껴지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죠. 책 쓰러 베트남에 갔을 때도 내 휴가 써서, 내 돈 들여서 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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