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유명한 식물 블로거이자 네이버까페 <모초진>(모두가 초록에 진심)의 운영자이신 '프로개'님과 배우자이신 '로서하(김주희)' 작가님께서 함께 쓰신, 5년 동안의 경북 안동시의 폐교 임대 생활 경험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운동장과 뒷산까지 약 1만 2천평의 부지와 470평의 2층 건물을 빌려쓰는 대부료가 1년에 800만 원씩이니 엄청 저렴한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폐교가 되고 나서 10년 동안 방치된 이 거대한 건물과 부지를 사용료까지 내가면서 유지관리하는 업무를 떠맡은 거라고 볼 수도 있지요.
프로개님의 책 <드루이드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2023)는 발코니 공간도 누릴 수 없는 한국의 공동주택 공간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로개님은 이런 실내공간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들의 한계와 어찌보면서 자신의 섬세한 노력들조차 그저 최대한 죽지 않고 버티게 도와주며 식물의 숨이 붙어있는 시간을 늘이는 것 뿐이 아닌가 하는 무력감에 번아웃이 오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 로서하 작가님은 1년의 안식년(+1천만 원의 용돈까지!)을 선물해주신다고 하셨고, 이 선물이 불씨가 되어 <모두의 pH>라는 연구실험 프로젝트를 위해 프로개님과 로서하님이 육지의 오지에서도 섬처럼 외딴 곳인 폐교생활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요.
두 권으로 이루어진 <폐교생활백서>의 1권은 프로개님이 쓰셨고, '아주 많이 부족한 희망찬 하루'라는 부제입니다. 저는 세세한 내용들을 프로개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보다 풍부하고 생생하게 읽은 후였지만, 프로개님과 이 폐교생활 시도를 알지 못했던 분들에게 간결하게 소개해주기에 딱 알맞은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영상 전공으로 단편영화도 찍으셨던 분이라 책에 등장하는 사진들과 시나리오같은 글솜씨도 일품이고요.
2권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은 폐교생활의 동반자였던 배우자 로서하 작가님이 쓰신 에세이인데, 시골생활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도시 여성이 외진 시골 폐교에서 5년 동안 도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면서 느낀 점들을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서술해주셨습니다.
프로개님과 로서하님은 이번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수백 명의 모초진 회원들을 폐교로 초대하는 행사를 통해, 그간 키워오신 수천 개의 화분들을 대부분 나눔하신듯 싶고, 이제 폐교 생활을 정리하시고 보다 작은 규모이고, 모르는 사람들이 불쑥 찾아올 걱정을 내려놓고 지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이사하실 것 같습니다.
(아마 식물들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단독주택이면서 좀 더 따뜻한 곳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프로개님을 알기 전부터 농막을 준비했고, 아파트에서 살면서 차로 30분이 안걸리는 거리의 190평 밭에서 텃밭을 가꾸고, 유실수들을 심고, 닭들을 키우고 있어서 어찌보면 이 두 분의 폐교 프로젝트의 미니멀한 버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에세이 속 문장과 사진들에서 생략한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들이 짐작이 되고, 좋았던 경험들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경제적 효율성으로 치환되지 않는 삶의 경험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요.
이런 시도가 들판에 피어난 서양민들레처럼(정원사나 농부에겐 악몽이지만) 소멸해가는 전국의 시골 곳곳으로 번져나가면 좋겠고, 국회나 지방정부, 공무원들 역시 도시가 가지지 못한 시골의 강점인 '넓은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도시인들에게 어필해서 유혹할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네요. 시골은 '시간을 내어 가만히 바라보는 여유'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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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이 부족한 희망찬 하루> - 프로개
42쪽
모든 건 '가드닝 식물들은 어떤 pH의 흙에서 잘 자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어요. 그걸 알아보려면 비를 맞지 않는 장소에서 다양한 흙으로 식물을 키워보는 수밖에 없었죠.
204쪽
경악의 첫해, 감탄스러운 두 번째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 차가 되자 폐교에도 더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상이 되어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 - 로서하
29쪽
폐교에서의 생활은 내내 그랬던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막연하게 좋을 것 같았던 부분은 훨씬 더 좋고,
막연하게 불편할 것 같았던 부분 역시 훨씬 더 불편했습니다.
151쪽
시간을 내어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나든.
192쪽
자신을 살펴주세요. 가능한 한 다정하게.
이기적인 마음이 넘쳐나는 세상에 친절과 다정함이 얼마나 귀한 가치가 되었나요. 다정함과 친절을 긁어모아 나를 위해 쓰는 거예요.
그렇게 내 안의 다정함이 조금 더 자라나 충분해졌을 때 다른 이에게도 그 다정함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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