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양미]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2024)

독서일기/사회학

by 태즈매니언 2025. 1. 19. 00:05

본문

 

정확히는 어디인지 모르지만 2015년에 전북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지역으로 이사온 사회주의 운동 활동가가 쓴 책인데, 2015년에 귀촌했지만 여느 귀촌인과 다른 삶을 살았던 저자가 2019년 코로나로 인해 3년 가까이 단절되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기간 동안 지역지 기자, 보조금사업 단체 활동가 등 귀촌생활의 경험들을 녹여서 이 책을 냈더군요.

저자는 '금리'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한국이 미국과의 재수교 이전의 쿠바같은 사회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되길 바라고(이건 개인의 신념이라고 하지만), 시골의 공공이 무능한 구조와 원인을 냉철하게 파악하면서도 대안으로 더 많고 거의 전부에 가까운 공공의 역할을 주문하는, 제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긴 합니다.

권리를 인식하려는 노력들이 쌓여야 제도로 확정된다는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나쁘게 보면 '해줘'의 끝판왕이라 그냥 무진장에 한국판 아미시 공동체를 하나 꾸리시지, 막상 본인은 비판말고 시골에서 산 8년 이상의 시간 동안 자신의 주장 중 그 어떤 것도 실천하는 행동을 안했으면서 국가에 요구만 하고 있나 싶었죠. 이미 주민 1인당 국비나 지자체교부금 지원금액을 보면 농어촌 주민들은 서울같은 대도시 주민보다 10배 정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건 왜 언급안하셨는지.

저자의 기질을 보면 농어촌으로 흘러가는 예산과 사업들을 거부하고, 국가는 간섭하지 말고 나는 내가 살고싶은 데로 살거라는 결기가 맞을 것 같은데, 거부하는 개입과 요구하는 개입이 계속 섞여있으니 해결을 위한 주장에 동의가 안되더군요.

비록 제가 전혀 동의할 수 없어 괴로운 주장들이 많았지만, 우리사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시선과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라영 작가님의 추천사가 이 책의 가치를 잘 소개하고 있으니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한 번 찾아보시길 추천드려요.

제가 보기에 이 책의 가치는 지금의 비수도권 시골마을의 현실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시골에서 가장 비주류이자 약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죠. 저는 대중교통시스템이 무너져가고 있는, 운전을 못하거나 차가 없는 시골주민들의 전혀 보장되지 않는 교통권 상황 부분이 특히 인상깊었습니다.

저자분의 '무제한 공적지원 정책' 주장에서 유일하게 제가 동의되는 부분은 대법원이 버스회사의 노선권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판례를 바꾸지 않는 이상, 비수도권 군내버스 사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느니 차라리 천원택시나 콜버스 같은 수요응답형교통수단을 공영제로 운영하는 것이 예산의 효율성이나 이용자들에게 낫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통령제와 비슷한 폐해가 있는 이장제도의 문제점에는 공감하지만, 주민자치회가 과연 법정리마다 구성이 될 수 있고, 제대로 운영될 것인지는 의구심이 드네요. 최소한 이장은 행정말단의 집행자로서 권한을 누리는 만큼 책임을 지긴 하는데 주민자치회라는 기구에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일까요?

 



-----------------------------------------

66쪽

"조만간 여기를 떠날 생각이에요." 차 안에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대뜸 꺼내놓은 그의 말이다. 그는 집 앞 텃밭에서 스스로 먹을 것을 키우고 자연에 피해를 덜 주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했었다. 그랬던 마음이 변한 걸까? 다시 도시의 편리함이 좋아졌을까? 돌아오는 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혼술에 지쳤어요." 듣고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농촌에서는 이동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구할 때도 자가운전은 당연한 전제 조건이고, 누군가를 만나 술을 한잔하려 해도 음주 운전이냐 비싼 택시비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연결되지 못하는 시골살이는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몰아간다.

86쪽

시골에서 자가운전자와 대중교통 이용자가 살아가는 세계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의 불편함은 그저 '그들만의 문제'일 뿐이다. 가족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면허와 차량을 가진 사람은 귀찮지만, 본인이 시간에 맞춰서, 내킬 때, 대중교통 이용자를 '옮겨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열한 (운전자에 대한) 눈치보기나 불편한 감정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청소년들과 이주 여성들은 시골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의 불편함 못지않은 것이 가족 내 자가운전자들에 대한 불편한 눈치보기라고 말했다.

170쪽

전북여성농민회 이현숙 부회장은 "농촌에서 여성 농업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52퍼센트다. 그런데도 여성 농업인의 삶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랜 노력 끝에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성평등기본조례를 만들고, 이를 근거로 중앙정부에서 각 지자체로 가는 사업이 한 해에 40~50개 정도된다. 그러나 이들 사업을 모두 알고 홍보, 집행하는 공무원을 찾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확인한 결과 청년정책도 비슷해서 진안군의 청년정책사업은 62개였다고 합니다.)

190쪽

때때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프로젝트 지원금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에서는 활동비가 지원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는 엄청난 서류가 필요하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처리할 때마다 나는 내가 공무원들에게 하청받은 활동가들에게 임시 고용된 단기 알바처럼 느껴졌다. 프로젝트는 늘 지원금에 따라 진행되기 마련이라 활동을 위해 지원금을 신청하는 것인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사업은 늘 공무원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다듬어졌고, 계속 같이하자는 약속도 처음 시작할 때 말뿐이었다.
사업 내용은 공모하는 주체의 입맛에 맞게 짜이기 마련이라 활동에 대한 상상력은 거기서 거기다.
프로젝트로 시작해 프로젝트로 끝나는 활동이 끝난 자리에는 건물만 남는다. 나도, 활동도 소모품이다. 어쩌면 '활동가'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내가 있었던 자리에 채워진 새로운 임시 프로젝트 사업 활동가도.

230쪽

이장단 회의에 다녀온 후 동료에게 '이장'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알려줬다. "공무원한테 기자가 전화를 하면 앉아서 받지만, 이장이 전화를 하면 일어서서 두 손으로 받는다." 그리고 이장에 대한 기사는 쓰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못 건드리고, 건드리면 큰일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에 마주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