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혜 작가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신 이유를 알겠네요. 서울 출장을 오가는 버스와 열차 안에서 계속 읽었고 조금전 오송역에서 간선급행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제 올해의 책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들을 폰으로 검색도 하며 읽었는데 나중엔 무조건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휙휙 봤습니다.
꼼꼼한 작가가 사건을 겪은 인물과 충분한 시간을 통해 공감을 얻고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재구성한 빼어난 르포르타주 작품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도 있고요.
빈티지 가구나 소품같은 공예품들이긴 하지만, 저도 길게는 100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들을 일상에서 직접 보고, 만지는 경험을 할 때 얻는 만족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이 때로는 예술품들을 표백해둔 채 수용한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기에 브라이트비저와 그를 이해해주려 했던 주변사람들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고요.
아름다운 물건들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야 자연스럽지만 공공을 위해 전시된 작품들을 훔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이후에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작품과의 거리를 얼마나 더 넓히는지, 주위에 반사회적인 행동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어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변질된 수집벽을 스스로 그만두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간접적으로 배웠고요.
왜 간송 전형필 선생이나 이건희 회장같은 유수의 컬렉터들이 자신이 소유한 작품들을 대중을 위해 공개했는지도요. 더 없이 사랑하기에 그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놓아준 소장자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게, 예술품 도둑이라는 걸 이 <예술도둑>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도둑의 수법들이 자세히 나오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예술도둑이 되겠다는 마음을 버릴 겁니다. 산 마르코 광장의 네 마리 말 조각상처럼 이리저리 떠돌더라도 어디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것과 숨겨진 장물로 보관된 상태를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위스와 프랑스의 변호인들의 변호전략도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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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보통 도둑은 훔치다 잡히지 않는다. 망설이다 잡힌다.
36쪽
그는 아무리 강렬히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 서 있어도 박물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런 작품과 마주하면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술도 한 모금 마셔도 좋다. 간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된다.
86쪽
박물관 절도 사건을 거의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작품을 저장고에 넣고 문을 잠근 뒤 무장 경비를 세우면 된다. 하지만 이러면 당연히 박물관도 사라진다. 박물관이 아니라 은행이 된다.
149쪽
예술은 생존의 압박과는 거의 무관하며 여가 시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중략) 예술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진화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253쪽
“금전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의미 자체, 그리고 물건과 장소 사이의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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